순례, 느림과 비움을 통한 자기성찰

  • 등록 2023.12.15 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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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람들이 걷기 열풍에 빠져들고 있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 국민들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건설회사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도산사태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거란 경제예보가 나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나 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모든 업종의 기업들 역시 백척간두 앞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인의 일상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인데, 대통령의 잦은 외유와 부산엑스포 유치와 같은 국제행사유치에 주요 경영인들이 차출되고 행사에 앞장서다 보니 기업경영에는 단절이 생기고, 어려움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경제상황을 나빠지게 한 대내외적 요인중 하나는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에서 기인하는 바가 제일 크리라 판단합니다. 소위, 동맹강화를 외치며 한미일의 결속을 주장하고, 미국과 일본에 대한 종속적인 동맹관계의 수립은 가능했는지 몰라도, 이러한 일방을 중심으로 한 외교정책은 다극 중심의 정책을 펴는 다른 국가들을 자극하였고, 더 나아가 블록화 된 그들의 다극 구조안에 접근조차 할수 없게 되어 그들과의 수출입 등 경제교류도 어려워진 것에 기인한다 생각합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일본은 자국의 실리를 위하여 경제적, 적대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중국 등과도 현안문제로 접촉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중국하고 이념적 단절을 택하였기에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단절과 표류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남방정책과 북방정책은 한미와의 공고한 동맹관계안에서 스스로 우리의 자주적인 역량을 보인 외교노선 이었는데 이 마저도 이 정부 들어서 폐기된 듯 잠잠합니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영업사원 1호라 치켜대며 13차례나 해외국빈방문을 하더니, 국내투자유치는 10조원에 불과한데 해외에 투자한 대한민국의 투자자금은 100조이상이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선거국면에 돌입하였습니다. 국민 역시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나, 야당에 대한 심판의 기회는 이때 뿐이므로 각자의 마음속에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시리라 봅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반성보다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넘나 들며 공천을 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매우 시끄럽습니다. 국민들의 질타는 쏟아지는데 정치권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오직 공천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끄러운 “내 탓이요가 아니라 네 탓이요”를 남발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집단이며, 이들이 국민의 선량이라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참으로 어둡습니다. 어두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저는 제가 할수 있는 일로서 순례를 통한 자기반성과 스스로의 혁신을 도모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순례(巡禮)를 직역하면 예를 다하여 돈다는 뜻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순례(Pilgrimage)란 성지를 차례로 찾아가 참배하는 것으로 종교적 의무 또는 신앙 고취의 목적과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돌아보는 여행을 뜻합니다. 순례를 하는 사람을 순례자라고 하고, 종교적 목적을 지닌 여행으로서 일상에서 벗어나 신앙심을 고취하고 새로운 종교적 경험을 체득하며, 종교가 갖는 참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고자 하는 종교의례의 일종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순례(pilgrimage)는 라틴어 어원인 '패레그리눔'(peregrinum), 즉 '먼 곳을 방랑함'(wandering over a distance)에 주목하면서 성지를 향해 '가는' 행위와 그 성지에 대해 '예경'(禮敬)의 뜻을 표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걷기가 용이한 Tracking Course가 생겨나고, 새로 개발되면서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걷기열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걷기 좋은 길이 이미 차고 넘칩니다. 바다를 끼고 이어진 길도 있고, 높은 산의 둘레를 도는 길 등 실로 다양한데, 이중에서 제주 올레길, 부산에서 고성까지 바다를 따라 이어진 해파랑길, 서해안 길, 평화누리길, 지리산둘레길, 서울의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은 남녀노소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기성찰과 건강유지, 그리고 관광을 겸한 걷기 좋은 길이라 다들 삼삼오오 즐겨 걷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아직 역사와 문화가 안착된 길은 아닙니다. 오랜기간의 역사적 고증이나 문화적 테마가 없는 길은 죽은 길입니다.  

 

저 역시 이순(耳順)을 넘긴 지 조금 시간이 되었으니, 귀가 순해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까탈스럽기만 하기에 이런 마음을 조금 더 순하게 정제하고,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반성의 기회를 갖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과 그간 살아오면서 오랜 기간 습득한 작은 능력이라도 이 사회를 위하여 사용할 작정으로 둘레길을 홀로 걷거나 먼 순례길에 동참하려고 준비중입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종교 별, 순례길은 각기 다르고, 일년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수백만명씩 동참하는 길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의 3대 성지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꼽습니다. 물론 교황청에서 인정증 국제 순례길 역시 우리 국내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치명하거나 순교한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말씀의 길, 생명의 길,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로 이루어진 길로 아시아에서 교황청이 인증한 유일한 국제 순례지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충북의 배론, 충남의 해미, 경기의 미리내, 서울의 절두산등이 대표적인 성지입니다.

 

제일 먼저 성지순례가 의무화가 되어 있는 이슬람의 성지순례를 살펴봅니다. 이슬람의 경우에는 성지순례가 신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 중 하나이며, 일생에 단 한 번은 가능한한 메카에서 성지순례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다른 불교나 기독교 등의 성지순례는 선택사항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교리상 '의무'로 규정한 게 큰 차이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카가 속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은 두 성지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달게 되었으며, 메카는 무슬림 외에는 아예 출입이 금지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경우, 재정 등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면 이 의무는 굳이 수행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는 갈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 한해서고, 여건이 충분한 사람은 당연히 순례하는 게 정상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비행기나 교통의 발달과 경제성장 등으로 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나, 그 이전에는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메카에 가기에는 기회비용을 희생해야 하는 문제가 컸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슬람권 국가라고 해도 메카에 발도 못 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카는 현재 수니파 와하비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 내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메카를 쉽게 방문하기는 힘이 듭니다. 사우디는 이슬람 국가 또는 이슬람 신자가 많은 국가들에 대해 매년 메카 방문용 비자발급 쿼터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카 방문이나 순례용 비자를 발급받은 순례자라 하더라도 제다공항 등 제한적인 입국장소를 통해 사우디에 입국하여 사우디 당국이 제공하는 교통편을 통해 메카를 순례한 후 바로 출국해야 하는 제한도 있습니다.

 

관광 목적의 비자 발급이 사실상 불가능 하고, 다른 목적의 비자를 통해 입국한다 하더라도 메카 접근은 사실상 어려운 게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현실입니다. 성지순례객은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에 있는 제2의 도시 제다에 모두 집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란 나라가 사막으로 뒤덮여 육로교통이 편한 편이 아니므로 일부 가까운 나라에서 배 타고 가는 것 말고는 대부분 제다의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을 이용하여 입국하며, 이 공항은 순례객을 위한 편의 제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메카 카바 신전으로 가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성지순례를 하게 됩니다.

 

성지순례 의식은 먼저 카바 신전 주변을 일곱 차례 돌고,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를 일곱 번 왕복합니다. 이것은 하갈이 어린 이스마엘에게 먹일 물을 찾기 위해 헤매던 길을 재현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후 순례객은 '잠잠의 샘' 성수를 마시면서 하느님이 이스마엘을 위해 샘물을 마련한 기적을 재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메카 동쪽에 있는 아라파트 동산에 오르고 무즈달리파 평원에서 야영을 하며, 셋째날은 사탄의 기둥에 돌을 세 번 던지고 마지막 날 동물을 제물로 바칩니다.

 

순례자도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조금 잘라서 상징적으로 희생 의례에 동참하는데,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순례가 무효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지순례를 마친 순례자는 “하지”라는 명칭을 받게 되고, 이슬람의 의무를 이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지순례에서 “성지”라는 것은 현재와 과거, 미래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으로, 과거의 길에서 현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내일을 준비한다는 의미로 마치 한 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 세계 많은 이가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불교의 성지순례길은 영적 탐험과 문화의 교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특별한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자에게 성지순례는 단순히 성지를 참배하는 것을 넘어서 종교적 영감과 지혜로운 삶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인도 네팔 순례기> 저자인 각전 스님 역시, ‘인도 불교 성지순례길에서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시나가르와 같은 4대 성지를 소개하며 성지순례가 정신을 향상시키고 스스로를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였고, 동양의 대표적인 불교 성지 순례길인 일본의 시코쿠 역시 “시간도 쉬어 가는 길”이란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티벳의 오체투지는 가장 어려운 불교성지 순례방법이기도 합니다.

 

“시코쿠” 길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일본 열도 4개섬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구”에 있는 88개의 천년 고찰을 차례로 참배해 가며, 하나의 원으로 순례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1,200년전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홍법)대사”가 “시코쿠” 해안을 따라 걸으며, 수행한 것이 시초가 되어 생긴 길인데, 시코쿠의 “토쿠시마” 해안가에서 출발하여, “고치”라는 곳과 “에히메”를 통과하여 “가가와”에 도착하면 순례가 마무리되는 길인데 거리상으로는 약1,200킬로미터의 길로, 약 60일정도 걸리는 길이며, 사람들은 형편에 따라 나누어 걷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시코쿠에 가면 하쿠이라는 흰색의 수의를 입고 걷습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를, 걷다 죽어도 좋다는 뜻이며,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과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더 많이 걸었고, 그들은 걷다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죽을 각오로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코쿠는 바람도 쉬고, 호흡도 쉬는 그런 조용한 길이니, "죽기전에 떠나라"는 말이 살아있는 내 뇌리를 때리곤 합니다.

 

시코쿠에서 태어나 시코쿠에서 깨달음을 얻은 쿠가이(홍법) 대사(774년-835년)의 발걸음을 좇는 길로,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진언종을 창시한 홍법대사는 최초로 중일사전을 펴내고, 일본어 알파벳인 히라가나를 만들기도 한,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승 중의 한 분입니다. 바로 '하쿠이'라 불리는 흰 옷은 순례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난 1,200년간 순례자들은 홍법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깨달음을 간구하거나, 간절한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험한 길을 걸어서 순례할 수밖에 없던 순례자들은 이 길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기에 순례자들이 입는 전통 의상인 흰 옷은 길에서 삶을 마치게 되었을 때, 수의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갈림길마다 빨간 화살표와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순례자의 그림이 길을 알려주기에 어지간한 길 치도 걱정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절에 들어서면 정해진 순서대로 참배를 하고, 순례는 도쿠시마현(德島)의 1번 절 료젠지에서 시작됩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순례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함으로써 순례를 시작하게 되는데, 1번 절에서 10번 절까지는 4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로 하루 이틀에 걸을 수 있는 평지길이나, 11번에서 12번 절 쇼산지까지 가는 길은 전체 순례길 중 가장 어렵기로 소문난 길입니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을 끝도 없이 오르는 깊은 산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쿠시마현의 마지막 절인 23번 절 야쿠오지는 태평양에 면한 절입니다. 야쿠오지에서 다음 절인 고치(高知)현의 24번 절(홍법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까지는 무려 84킬로미터로, 절이 사라진 길은 더없이 적막하고 쓸쓸하며 멀게만 느껴 짐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길입니다. 37번 이와모토지에서 38번 콩고후쿠지까지는 이보다 더 먼 87킬로미터로 전체 구간에서 절과 절 사이가 가장 긴 길로, 절벽으로 막힌 산들과 망망대해인 태평양으로 인해 종종 고립무원의 기분이 들기도 하는 자기 성찰의 본원인 곳이기도 합니다.

 

시코쿠의 세 번째 현은 에히메현(愛媛縣)인데, 절벽 위에 서 있는 45번 절인 이와야지를 지나면 시코쿠에서 가장 큰 도시 마쓰야마가 나타납니다. 전설적인 온천에서 지친 몸을 쉬고, 8개의 절을 이 도시에서 통과하는 동안 오랜만에 도시의 혜택을 즐길 수도 있는 곳입니다.

 

이후, 가장 높은 900미터 산 위의 66번 절 운펜지를 지나면 가가와현(香川)이 나타나고, 인구 1인당 우동집의 숫자가 일본에서 가장 많다는, ‘사누끼 우동’의 본고장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곳을 걷는 내내 싸고, 맛있고, 양까지 푸짐한 우동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뇨타이 산을 넘어 88번 절에 도착하면 시코쿠의 전통에 따라 그동안 들고 온 지팡이를 이곳에 남겨두고 마지막 40킬로미터를 더 걸으면 1번 절이 나타나는데 시코쿠의 길고 긴 순례가 끝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가톨릭 신자들의 3대 순례장소 중 하나입니다. 로마나 예루살렘은 비행기로 쉽게 접근 가능하나, 산티아고 만은 자신의 노력으로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중세때부터 이어진 길이라 순례객들이 가기 쉽게 잘 정비되었지만 과거에는 들짐승과 도적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걸어야만 했던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산(Saint)은 스페인말로 성인이라는 뜻이며, 티아고는 예수의 12사도중 하나인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스페인은 야고보 성인의 전교 장소였으며, 지금도 야교보 성인의 무덤이 이곳에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여행지입니다 코로나 전인 2018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한국인은 5,665명으로 전세계 9위, 아시아 1위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 여행자가 많습니다.

 

생장드포르에서 출발한 후 얼마되지 않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스페인 북서부의  ‘산타마리아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의 종소리는 매우 고혹적입니다. 담벼락 근처에 심어진 호랑가시나무의 뾰족뾰족한 이파리와 빨간 ‘사랑의 열매’ 위에 흰 눈이 쌓여 있으면 크리스마스 엽서 같은 풍경이 이따금 펼쳐집니다. 이 곳이 바로 중세시대 사제가 미사를 드리던 도중 성배에 담긴 포도주가 실제 피로 변했다는 성배의 기적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적의 성배 앞에 "순례자를 위한 축복 기도문”이 있는데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세요.”

 

성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Camino)은 전 유럽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있습니다.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독일 등 다양한 지점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걸어오는 지도는 조개처럼 한쪽 끝을 중심으로 부채꼴모양으로 길이 퍼져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총 연장 800km나 되는 프랑스길(Camino Frances)은 가장 인기가 높은 순례길입니다. 프랑스 생장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객 중 60%가량이 프랑스길을 걸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례길은 100km 이상만 도보로 걷거나, 200km 이상을 자전거로 걸으면 순례 인증서를 주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1주일에서 10여일 정도 코스를 걷기도 하고, 프랑스 길의 경우, 산티아고에서 역으로 약 100km 남짓 떨어진 사리아 또는 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증서를 받을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카미노(순례길) 주변에는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봄에는 우리나라 개나리꽃처럼 노란 ‘또쇼(Toxo)’가 가득 피어 있기도 하고, 병아리의 솜털처럼 동글동글한 ‘미모사’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땅 위로 솟아오른 수선화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자목련, 백합, 철쭉까지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동백입니다. 동백은 우리나라의 경우, 12월에서 4월에 피어나는 곳입니다.

 

이 시기 대서양 해변을 걷는 산티아고순례길 포르투갈 루트에서는 ‘동백꽃’이 곳곳에 지천입니다. 동백꽃은 18세기 말 일본과 중국에서 포르투갈 선원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오게 되었다 합니다. 우리나라도 바다를 따라 전북 고창과 전남 여수와 인근 제주도와 같은 섬 지역에서 많이 자생하듯이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역시 리아스식 해안지역으로 습기가 높고, 온화한 날씨, 비옥한 토질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동백나무 밀집 지역이 된 것 같습니다.

 

폰테베드라의 동백나무 정원인 ‘파소 데 루비아네스(Paso de Rubianes)’는 중세시대 귀족의 대저택입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는 800여 그루의 다양한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분홍색, 붉은색, 흰색 등 다양한 동백꽃이 꽃잎 채 뚝뚝 떨어져 있는 처연한 모습은 우리나라 여수, 제주 등 남해안 풍경만큼 멋집니다. 갈리시아의 도심 곳곳에는 동백나무가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기도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과 그를 기념한 성당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참수당했던 순교자 야고보의 주검은 제자들에 의해 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의 해안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813년 별빛이 비추는 곳이 있어서 가보니, 무덤이 있었고 3기의 주검이 있었는데, 참수를 당해 목이 없는 주검 한구와 정상적인 2구의 주검이 있었다 합니다. 목이 없는 것은 아고보 성인이었으며, 나머지 2구는 야고보 제자들의 무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순례길의 목적지로 찾아가는 콤포스텔라는 그래서 ‘별빛(Stella)이 비추는 들판(Campos)’이라는 뜻입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책 “순례자”에서 “누군가 자신의 길을 발견했을 때, 잘못된 시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전합니다. 실망, 실패, 의기소침은 신이 길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라는 겁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에서도 밤하늘에 선명하게 흐르는 은하수는 주인공이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 주는데, 코엘료의 책 외에도 수많은 국내외 저자들의 답사기는 21세기에도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적인 사색과 명상의 길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손꼽게 합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갈리시아의 수도입니다. 모든 순례길들이 모여드는 갈리시아를 걷다 보면 끊임없이 만나는 상징물들이 있습니다. 돌로 만든 십자가 ‘크루세이로(Cruseiro)’인데, 갈리시아 전역에만 1만 2000여 개나 있는데 돌십자가는 여행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준다 합니다. 십자가의 앞뒤에는 예수, 성모 마리아, 아담과 이브, 성 야고보,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코 등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을 앞에 마치 석등이나 장승처럼 서 있는 돌십자가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순례길임을 일깨워주는 표식입니다.

 

순례길에서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조개껍데기, 화살표가 가야 할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데, 조개가 순례길의 상징이 된 이유는 산티아고의 유해가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조개껍데기에 싸여 있었다는 전설 때문입니다. 아마도 조개가 시신의 부패를 막았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 처럼 조개가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으니, 조개는 새로 태어나는 삶을 의미하거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카미노(순례길)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여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프랑스길 사모스의 베네딕트 수도원 인근에는 순례자의 발을 치유해주는 높이 27m의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500살 가량 된 이 나무는 두 사람이 마주 안아야 손이 닿을 정도로 두껍습니다. 안내문에는 “순례자가 이 나무를 안아 보고 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발이 아프지 않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프랑스길을 걷다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가까운 언덕 위에 올라가면 저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과 종탑의 실루엣이 보이는 지점이 있는데,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 기쁨의 언덕이란 언덕이 있습니다. 언덕 위에는 두 명의 순례자 동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비로서 순례가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안도를 느끼게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는 언제나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로 북적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순례자,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걸고 걸어온 사람도 보입니다. 산티아고 대성당 지하에는 은으로 도금한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대성당에 들어갈 때 이용하는 ‘자비의 성문(聖門·Porta Sancta)’은 ‘성 야고보 희년(禧年)’에만 열리는 문입니다.

 

교황청은 2021년을 희년(성년)으로 정했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교황청의 특별허가로 연기되었습니다. 교황청에 의하면 야고보 성인의 희년은 1122년 갈리스도 교황이 제정하였으며, 6-5-6-11년을 주기로 기념하였으므로 1세기에 14번을 야고보 성인의 축일인 7월 25일을 전후한 안식기념일입니다. 

 

산티아고대성당에서는 매일 낮 12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리고, 미사 때에는 사제가 순례자의 이름과 국적을 직접 불러주며 기도해주는데, 제대 앞에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져 있는 무게 60kg, 높이 1.6m에 이르는 대 향로 (보타푸메이로· Botafumeiro)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이며, 중세시대 수많은 순례자들이 24시간 성당의 회랑에서 머물렀을 때, 순례객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수시로 대 향로의 줄을 잡아당겨 향을 뿜어 댔다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는 순례를 마치면 전대사의 은전을 받는 특전도 받게 됩니다. 전대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죄와 보속의 전부를 사해주는 대사입니다.

 

떠나는 길은 언제나 막막합니다.

 

떠나는 이가 그 누구든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실패하더라도 갈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가족, 직장,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알아가는 길입니다. 모든 것을 지금 바로 내려 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며, 걷고 또 걸으면서 부모님이 주신 생명의 존귀함과 오늘의 나를 있게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자신의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다짐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늘 떠날 준비를 통해 순례길에 오르고,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생활과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외적환경에서 자신의 온전한 삶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이세훈 기자 moderato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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