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수운 최재우 탄신 200주년 기념 단상

  • 등록 2024.01.09 16: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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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치, 경제적 현실을 동경대전과 동학혁명에서 살피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수운 최재우는 1824년(순조24년) 음력 10월 28일 경주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의 몰락한 양반 가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1864년 음력 3월 10일 대구 남문 밖 관덕당 뜰에서 서학에 대한 사술의 죄목으로 참수당하였다. 그는 37세에 득도하여 40세 12월에 체포되었으니, 그의 공 생애는 2년반 남짓하다. 그러나, 수운의 “동경대전”은 포괄적 세계관과 기존의 왕정을 축으로 하는 체제를 민주의 축으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인간관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서이다.

 

 

공자는 인간의 평등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인간의 인(仁)과 불인(不仁)만을 말할 뿐이었다. 인간이 평등하다고 하는 것은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명제는 될 수 있을지 언정 사실판단의 기준은 될 수 없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평등하기 위하여는 너무 많은 인간내외적 장벽들이 많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 존엄성의 기반이 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통해 “天視自我民 視, 天聽自我民聽” 즉, 하늘은 백성이 보는 것으로부터 보며, 하늘은 백성이 듣는 것으로부터 들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하느님 야훼라든가,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 카미등 모든 신은 바로 인간의 소리의 투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맹자는 하늘의 소리는 오직 백성의 소리일 뿐이며, 하늘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일 뿐이며, 하늘로부터 명하여 지는 모든 권력은 백성이 명하는 권력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 제1조 2항에 나오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구절로 귀결된다 하겠다.

 

맹자는 혁명을 시인하였고, 민심을 배반하는 군주는 하찮게 취급하였으나 평소 군주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제안하지 않았다. 또한 맹자의 핵심사상인 인의(仁義)는 효제와 같은 실천 덕목만을 중시하고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가족공동체 윤리를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을 뿐 개인의 내면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부족하였다. 바로 이러한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 한계의 극복은 20세기 조선민중이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였는지 모를 일이며, 이를 위하여 조선민중은 서구역사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의 기반이 동학에 투영되어 민권이 성장해간 역사적 결실로도 나타났다.

 

도올 김용옥은 동학을 눈물이라 정의한 적이 있다.

 

세월호의 참변이나, 이태원 거리에서 꽃다운 젊은이들의 처참한 죽음을 우리가 눈물 없이는 지금도 바라볼 수 없듯이 동학의 혁명과정, 그 발생 연원으로부터 끝나지 않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은 최소한 30만명 이상의 조선민중이 아낌없이, 두려움 없이 목숨을 던진 사건이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사망자가 700명이 안되는 수준이고 보면 동학은 참으로 큰 다중 민중의 참여와 희생을 바탕으로 눈물 없이는 바라보기 힘든 혁명이었다.

 

동학은 기존체제에 대한 단순한 저항이나 항거가 아니라, 그 항거를 필연적인 운명으로 만들고 있는 집단의식이 “보국안민으로부터 다시 개벽에 이르는 인류사적 전환운동”이다. 동학은 서양에 반대되는 개념인 동(東)의 학(學)이 아니다. 수운은 동은 서의 상대가 아니라, 서의 침략에 자극받아 일어난 조선혼의 총체로 설명하면서, 동은 해동의 동이며, “이 땅”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수운은 설명한다.

 

우리 역사는 서구가 추구해온 근대라는 이념을 추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서구의 근대화가 낳은 것은 터무니없는 인간의 교만, 서양의 우월성, 환경의 파괴, 불평등의 구조적 확대, 자유의 방종, 과학의 자본주의에로의 예속, 진보의 신념, 체제에 의한 인간세상 지배, 민주의 허상, 이런 것들의 안착일 뿐이라 설명하고 있다. 수운은 근대를 맞이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답게 살아가는 큰 길을 제시한 것이다.

 

동경대전을 눈앞에 펼쳐 놓으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동경대전은 한 종교 개창자의 캐리그마(kerygma)가 결코 아니다. 반만년 민족사의 수난사가 이 한 책에 응집되어 신세계의 서광을 발하는 개벽의 심포니다. 세간의 정론은 동학을 조선역사 근대성의 기점으로 꼽는다. 실학이 근대성의 맹아일 수는 있으나, 왕정의 체제에 대한 근원적 부정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동학 역시, 프랑스혁명과는 다르다. 이는 민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왕권의 굴복이나, 인간의 자유와 평등, 재산권을 저항권을 보장하는 어떤 제도적 장치를 획득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오 동학민중항쟁을 “동학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정치사적으로는 비록 좌절로 끝난 사건이나, 그 내면의 제도개혁과 인간 개벽에 대한 요구의 본질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이 구현하려고 했던 정신적 가치를 뛰어 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제도개혁을 가능하게 만드는 포괄적 세계관, 그리고 왕정의 축을 민주의 축으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인간관을 체계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금년에 제94회 세계캠핑카라배닝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국제대회로 대회장소로는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 용검정일대를 경주시에 제안하였었고, 전 세계 캠핑카라바닝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는 물론, 전 세계인을 상대로 우리의 “포괄적 세계관과 새로운 인간관을 포함하는 개벽사상”인 “동학”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을 경주에 있는 천도교용담수도원(원장 최상락)과 중앙의 천도교재단,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협력 추진하여 전 세계인에게 알리면 어떨까 하는 움직임을 시도하였었다. 동학의 발상지이며, 천도교 성지인 경주 용검정 일대의 부지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최종 대회지는 이제 강원도 고성, 과거 잼버리 대회장으로 확정되었다. 참, 아쉬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 2024년 4월 10일,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준비를 하느라 각 당이 몹시 분주하다. 새로운 신당의 출현도 불가피해 보인다. 남는 자와 나가는 자는 서로의 패망을 언급한다. 한솥밥을 먹던 동지에게 서로 하는 말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잔인한 말잔치가 난무한다. 신인 정치인이 되겠다 희망하는 사람들 역시 국민적 신의나 정치 신념보다도 여야 공천을 받기 위한 줄서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므로 분당이든, 신당의 출현이든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력화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기존 양당에 실망한 국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특검인 “소위 김건희 주가조작사건과 대장동 사건”에 대한 쌍특검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으나, 예상한대로 대통령은 거부권을 즉시 행사했다. 국민을 무시한 행위가 이리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권여당과 정부에서 자행되고 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라는 말은 이제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말이 되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누구인지 우리 모든 국민은 분명히 안다. 이에 대한 책임은 거부한 자가 지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우리 국민은 높은 경제파고와 후진적 정치 구조안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되었다. 바른 선택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에 의한 임시방편식 인기몰이가 아닌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완성한 동경대전속의 새로운 세상인 민본사상과 새로운 개벽사상인 동학사상, 그리고 다중 민중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동학혁명이 내건 신념과 행동을 찬찬히 바르게 바라보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을 잘 기억하면 좋겠다.

 

수운 최재우는 그의 후계자인 해월 최시형에게 죽기 바로 전, “고비원주(高飛遠走)”라는 말을 남겼다. “높이 날고 멀리 달리라(뛰라)”는 뜻이다. 우리 국민 모두 높이 날고, 멀리 뛰면서 일부 대중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으로 바르게 판단하고, 올곧고 바르게 결정하는 순간들이 오면 좋겠다.

이세훈 기자 moderato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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