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에서 황소울음 잡아내는 징장鉦匠 이용구李龍九

  • 등록 2024.04.02 14: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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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장은 '유기장'이 아냐 혼을 담는 '악기장'이지
- 심금 울리는 '하늘황소 울음소리'
- 그만큼 미쳐야만 잡아낼 수 있어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칠용 본지 명예회장 / (사)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 |  이용구는 1937년 경남 함양에서 우체국에 다니는 이생기를 부친으로 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이용구가 태어난 경남 함양은 예로부터 징의 고장으로 유명하며 서상면 옥산리, 안의면 봉산, 서운부락,석천리, 서하면 송계리 등 20여 군데의 징점(공방)이 있었다.

 


함안의 징장이(장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온 설화가 있다. 신라시대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에 '시원 선생'이라 불리는 선비가 아내와 제자 둘을 데리고 토굴 속에 살며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밤, 제자 한 명이 보니 토굴 속에서 스승님이 시뻘건 불 속에서 원반형의 쇠판을 꺼내 두드리고, 옆에선 아내가 열심히 불매질을 하고 있었다. 이튿날 두 제자가 스승님께 간곡히 청하여 물으니, 그게바로 '징' 만드는 작업이었다. 제자의 청에 못 이겨 선생이 조건을 달아 징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조건이란 '1년에 꼭 1개씩만 만들되 품행이 올바르고 공덕이 좋은 사람에게만 건네라'는 내용이다.

 

지금도 전국의 원로 징장들이 징을 만들며 읊는 노래가 있다.


〈어여루 불매야 어여루 불매야/ 불매 부는 여러분들/ 불매 부는 내력이나 알고부나/ 옛날에 시원
 
선생 조작으로 만든 불매/ 불매는 있건마는 시원 선생은 어디 갔나/ 태고 때 시절이 언제라고/ 시원선생 있을쏘냐/ 어열시구 불매야 어열시구 불매야/ 저열시구 불매야 저열시구 불매야,  징장들은 매년음력 1월 3일, 10월 3일에 시원 선생을 기리는 의미로 화덕 앞에 상을 차려 고사를 지내며 일년의 무사태평과 좋은 징이 만들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징장 이용구씨를 만나기 위해 새벽 서울을 출발, 경남 거창군의 징 공방에 도착했다. 마침 공방 마당에서 이용구씨가 막내아들이자 조교 이경동(45)에게 징소리 잡기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징을 잡고 오른손으로 징채를 잡아 몇 번 쳐보더니 이내 징을 내려놓는다. 무척 힘들어 보였다.보통 징 1개의 무게는 3.5㎏ 내외다.


"열세 살 때부터 징 만드는 일을 도왔으니 벌써 60년이 흘렀구먼. 처음엔 어깻죽지가 늘어나면서힘이 들기 시작했는데 요즈음은 징을 들고 세 번만 쳐대면 무거워서 내려놓게 된데이. 그러다 보니요즘엔 바닥에 놓고 두드리며 소리 잡는 일만 전념하제. 요즘처럼 날씨가 추우면 어깨가 더욱 더 시려…." 8살 때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은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다.친척의 소개로 김천에서 징점(공방)을 하는 친척집에 갔다. 잡일은 고됐고 배는 고팠다.


그때 그의 마음을 위로해준 건, '징소리'였다. 징소리가 울려 퍼질 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김천징점의 주인 아들 오덕수씨가 함양군 서상면 꽃부리 마을로 옮겨와 징점(공방)을 차리며, 그도 함께함양으로 옮겼다. 그가 정식으로 징을 배운 것은 15살 때부터. 27세 독립할 때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쇠를 녹이고 징을 만들며 소리 잡기에 매달렸다. 징을 만드는 작업은 대개 밤 11시가 넘어 시작한다.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잠든 고요함 속에서 화덕의 불빛만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엔 쇠가 달구어지지만, 달구어진 쇠의 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징을 만드는 고수들은 결코 전등의 불을 밝히지 않는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오로지 징점 안의 망치 소리만이 쇠의 울음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불규칙적인 소리를 낼뿐이다.


징의 인기가 절정에 오를 때도 있었다. 징을 주문한 이들은 징이 만들어지는 시간에 징점 주위를 돌며 온갖 정성을 들였고, 징점 안에서는 욕설을 하거나 농담이나 휘파람, 심지어 화를 내는 것도 금기였다. 특히 징점에 여자가 드나들면 쇠에 구멍이 난다 하여 부녀자들의 출입을 엄하게 막았다.

 

그런가 하면 징점 대문 밖에 소나무 가지 세 개를 걸어 징을 만들고 있음을 주변에 알려 속세의 때 묻은자들의 범접을 엄하게 막았다. 이러한 지극정성 속에서만 사람들의 가슴을 애절하게 울릴 수 있는'하늘황소 울음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징 울음(소리)을 잡기 위해선 거기에 미쳐야 한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음메-하는 황소 울음을 들으면 '아 바로 저런 소리구나'하는 정도가 되어야 대정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징장들은 오로지가슴속의 느낌과 감각만으로 살고 있는 직업인이다. 가벼운 쇠판을 안쪽, 무거운 것은 바깥쪽에 대는데 모두 3장의 쇠판을 결합시켜 한 개의 징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징을 만드는 장인들은 유기그릇을 만들 수 있지만 유기그릇만 만드는 장인들은 징을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예전처럼 '황소 울음소리'를 가진 징을 찾는 사람이 드물다. 때리면 끝소리가 자지러지며 넘어가는, 여운이 단말마처럼 짧은 소리들을 많이 찾는 것이 요즘 세태다. 70년대 말 급작스레퍼져 나간 사물놀이 때문이다. 꽹과리, 북, 장구, 징 등 네 종류의 악기를 갖고 연주하는 사물놀이는웅장한 소리보다는 리듬감에 치중한다.


경남 거창에 있는 ‘두부자 공방’ 마당에서 징장 이용구(오른쪽)가 조교이경동에게 징소리 잡는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용구는 아들 넷 모두를 유기장, 징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아들들과 함께 운영했던 공방의상호는 '오부자 공방'. 다른 아들들은 독립했고, 막내아들 이경동과 함께 작업 중이다. 이경동은 대학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해있다가 아버지 성화로 들어와 오늘의 '두부자 공방'을 설립했다.


며칠 전 일본의 야나가와시(柳川市)에서 이용구씨가 제작한 70㎝의 대징을 주문해갔는데 그곳에선 이 징을 시청의 각종 행사 때마다 사용하며 비룡(飛龍:용이 날다)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징의 재료가 놋쇠(순수 구리 78%+순수 상납 22%의 합금)라 하여 흔히 징을'유기류'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징은 소리로서 생명을 이어온 우리 민족 고유의 기능을 지닌 전통악기인데 어떻게 유기그릇과 같은 종류의 '유기류'로 분류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공방을 떠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회장님, 징에도 여자소리, 남자소리가 있습니데이. 내가 두드려 만든 징의 소리는 아무나 지울 수 없어도 남이 만든 징의 소리는 지울 수 있는 장인이 진짜 징소리잡는 장인입니더!"


농사 잘 짓게 해 달라고, 풍수해 입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농민의 손에 들려져 있던 징, 하늘에 알리는 신호로 존재해왔던 굿판의 징. 그런 징과 한평생을 해 온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존영 기자 d80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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