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충렬사는 충신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남해 충렬사는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무공의 유구를 처음으로 안치한 것을 기려서 순국한 지 30년째 되던 인조 6년(1628)에 지역의 선비들이 초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효종 9년(1658)에 다시 지었으며,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액을 받았다.
사당 앞에는 우암 송시열이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충무이공묘비가 있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 내삼문, 외삼문, 청해루 등이 있다.
사당 후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초빈*했던 곳에 가요가 있다. 사당을 세운 이후에는 충렬사 옆의 호충암에
서 화방사(寺)의 승장 1명과 승려 10명이 교대로 사당을 지켰다.
초빈 : 장사를 지내기 전에 시체를 방 안에 둘 수 없는 경우에 관을 바깥에 놓고 이엉 같은 것으로 덮어서 눈비를 가리는 것,
가묘 : 정식으로 묘를 만들기 전에 임시로 쓰는 묘)
승장 :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인 '숭병'의 장수
This shrine was built to honor Yi Sun-sin (1545-1598), the most revered military commander in Korean history. He is best known for his successes as an admiral of the Korean nav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is shrine was established in 1628 on the site where Admiral Yi's body was first kept after his death in the nearby Battle of Noryang Strait. It was rebuilt in 1658, and repaired in 1899 and 1973.
Behind the shrine, there is an empty tomb marking the spot where Admiral Yi's body was buried before it was relocated to his family's cemetery in Asan. In front of the shrine is a pavilion inside
which is a stele honoring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Admiral Yi. The stele was erected in 1663. and its epitaph was composed by Song Si-yeol and calligraphed by Song Jun-gil, both renowned scholars.
There once was a Buddhist hermitage next to the shrine where one monk soldier and 10 monks stayed and watched over the sh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