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벨라루스 특파원 김선아기자
벨라루스의 중심부, 고도古都 네스비즈(Nesvizh)는 동유럽 문화의 심장이라 불린다.
그 중심에는 라지빌(Radziwill) 가문의 영광과 정신이 깃든 네스비즈 궁성(Несвижский замок) 이 자리한다.
이곳은 수 세기를 넘어 지식·예술·신앙이 한데 어우러진 인류 문화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성은 연못과 둑으로 둘러싸인 섬 위에 세워져 있어,
외적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환상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밝은 외벽, 섬세한 문장과 장식, 우아한 발코니는 르네상스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나님께 명예를, 조국에는 영광을, 자신에게는 양심을.”
(Богу честь, Отчизне слава, себе совесть)
짧은 문장이지만, 라지빌 가문의 품격과 벨라루스 귀족정신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다.

파르니 성당과 조상의 기억
궁전 옆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조반니 베르나르도니(Giovanni Bernardoni) 가 설계한
파르니 성당(Фарный костёл Святого Божьего Тела) 이 서 있다.
이 건물은 동유럽 최초의 바로크 건축물로 평가되며,
지하에는 라지빌 가문의 70여 개 석관石棺이 안치되어 있다.

이곳은 마치 한국의 종묘宗廟 와도 같은 신성한 장소로,
벨라루스 사람들은 “조상의 이름이 기억되는 한, 민족의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박물관으로 부활한 문화의 궁전
복원 작업을 마친 네스비즈 궁성은 오늘날 박물관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현재 이곳에서는 전시회, 음악회, 국제 축제 등이 열리며,
여름밤이면 클래식 선율이 안뜰에 울려 퍼지고 배우들이 라지빌 시대의 연회를 재현한다.

물 위에 비친 궁전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영원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곳은 더 이상 과거의 유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 예술과 인간 정신이 만나 새로운 문화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역사다.

오늘의 네스비즈는 벨라루스의 자긍심이자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붉은 벽돌 위로 저녁 노을이 물들면,
라지빌 가문의 그림자와 예술의 숨결이 다시 궁전 안을 거닌다.
“인간은 기억될 때까지 살아 있다.”

벨라루스의 속담처럼,
네스비즈는 지금도 기억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 있는 역사로 빛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