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붕정만리鵬程萬里는 큰 새 붕이 만 리를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청년에게 던질 수 있는 덕담이 아니다. 오늘의 사회에서 그것은 노력의 상징이 아니라, 구조적 무책임을 가리는 장식어가 되었다. 날 수 없는 하늘을 만든 뒤 날아오르라 말하는 것은, 격려가 아니라 회피다.
청년은 부족하지 않다.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사회가 허락한 비행 고도가 지나치게 낮다는 데 있다. 실패는 경험이 되지 못하고 낙인이 되며, 도전은 미덕이 아니라 위험 요소로 취급된다. 이 구조 속에서 붕은 날개를 펼치기 전에 계산부터 배운다. 높이 나는 법이 아니라, 추락하지 않는 법을 먼저 익힌다.
취업 시장은 창의를 말하면서 순응을 요구하고, 창업은 혁신을 외치면서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제도는 도전을 말하지만 관행은 안전만을 숭배한다. 그 결과 사회는 큰 새를 키우지 못하고,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날 수 있는 새들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청년이 날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하늘을 닫아버린 것인가.
불교에서는 말한다. 결과를 탓하기 전에 원인을 살피라. 남을 꾸짖기 전에 스스로를 비추라. 붕정만리는 개인의 기개가 아니라 공동체의 업業이다. 청년의 좌절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가 쌓아온 선택의 결과다. 경쟁만 남기고 기다림을 지우고, 성과만 남기고 과정을 삭제한 업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참회다. “왜 더 노력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왜 실패할 수 없게 만들었느냐”는 반성이 먼저다. 법문은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큰 새가 다시 날 수 있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청년의 날개인가, 아니면 사회의 하늘인가. 답은 분명하다. 날개는 이미 충분하다. 이제 바꿔야 할 것은 하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