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총사 칼럼】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필요한 시대

  • 등록 2025.12.23 07: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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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역지우莫逆之友의 가치”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성준 기자 |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조용해진다.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건넬 대상이 줄어든다. 가족은 곁에 있지만, 가족에게조차 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이 생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노년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돈일까, 건강일까. 아니면 함께 웃고, 함께 침묵할 수 있는 친구일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지금, ‘친구’는 더 이상 사소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며, 존엄의 문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은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 뒤 남는 것은 길어진 하루와 고요한 저녁이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막역지우莫逆之友이다. 서로 거스름이 없는 친구, 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는 친구를 뜻한다. 이해관계도 계산도 없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관계다. 중국 전국시대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서 비롯된 이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실해진다.

 

젊을 때의 친구는 함께 성장하는 동료였다면, 나이가 들수록의 친구는 함께 버텨주는 존재다. 성공을 축하해 줄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건강을 자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아픔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문제는 현대사회가 이런 관계를 점점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쟁과 효율, 속도 중심의 사회는 인간관계를 ‘쓸모’로 분류한다. 은퇴와 동시에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 인간관계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 결과 많은 노년층이 관계의 빈곤 속에서 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에서 친구는 사치가 아니다. 필수 인프라다. 친구가 있는 노년은 병원보다 덜 가고, 약보다 웃음을 더 오래 기억한다. 말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막역지우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금 이 나이에 새로 맺는 관계도 충분히 막역지우가 될 수 있다. 조건 없이 안부를 묻고, 성과 없이 시간을 나누는 관계라면 그 자체로 귀하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두 명의 진짜 사람이다. 삶의 말미에 남는 것은 명함도, 직함도 아니다. 함께 웃었던 얼굴, 함께 울었던 기억이다.

 

고령화 사회의 품격은 노인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노인이 외롭지 않은 사회인가로 판단된다. 그리고 그 해답은 제도 이전에 관계에 있다. 막역지우, 그 오래된 단어가 오늘 우리 사회에 다시 필요한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성공의 증인이 아니라
침묵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이성준 기자 dltjdwns7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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