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타국으로 반출되었던 조선 왕실의 건축 유산 ‘관월당(觀月堂)’이 100여 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고국의 땅을 밟았다. 이번 귀환은 정부 주도의 환수가 아닌, 일본 민간 사찰 주지의 결단과 한일 양국의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적 같은 기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조선 왕실의 기품을 간직한 사당, 관월당
관월당은 조선 후기 대군(大君)급 이상의 높은 위계를 가진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용과 박쥐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단청과 기와는 이 건물이 예사롭지 않은 격조를 지녔음을 증명한다.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일본 기업가에게 증여하며 반출된 관월당은 1930년대 일본 가마쿠라의 명소인 고덕원(코토쿠인)으로 옮겨졌다. 이후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사용되며 현지인들에게 사랑받아왔으나, 정작 그 뿌리는 잊혀진 상태였다.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된 ‘사토 주지의 결단’
관월당의 귀환 뒤에는 고덕원 주지이자 고고학자인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스님의 숭고한 결단이 있었다. 사토 주지는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다”는 신념 아래, 일본 내 우익 세력의 반대와 협박 속에서도 반환을 밀어붙였다. 특히 해체와 운송에 드는 수억 원의 비용을 전액 사비로 부담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한국 정부에 기증해 큰 감동을 주었다.
경복궁 계조당에서 만나는 ‘시간의 기록’
현재 국가유산청은 관월당의 귀환을 기념하여 경복궁 계조당(繼照堂)에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계조당 역시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최근 복원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관월당과의 만남은 더욱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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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돌아온 관월당: 시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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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경복궁 계조당 (세자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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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2025년 1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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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내용:
일본에서 해체되어 돌아온 관월당의 주요 부재(기둥, 보, 단청 조각 등) 실물 공개.
단청과 문양 분석을 통해 밝혀진 조선 왕실 건축의 특징 소개.
100년 전 반출 시점부터 고덕원에서의 모습, 그리고 귀환 과정의 긴박했던 기록물 전시.
현재 관월당의 부재들은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 보관되어 정밀 조사를 거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특별전을 통해 국민들에게 귀환 소식을 알린 뒤, 학술 조사를 바탕으로 관월당의 원래 자리를 고증하여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찾아온 관월당의 소식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문화적 동반자로서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