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한자 ‘休’휴는 단순한 쉼의 기호가 아니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순간, 그 형상에는 삶의 리듬과 존재의 회복이 함께 담겨 있다. 이번 작품은 이 ‘休’의 의미를 문자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글자는 해체되고, 획은 몸이 된다. ‘人’은 더 이상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서 있는 존재가 되고, ‘木’은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는 축으로 작동한다.
검은 먹은 사람의 자세로 변주되고, 그 아래를 감싸 흐르는 색의 혁필은 쉼이 멈춤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에너지의 축적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쉼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운동이며, 호흡이자 전환이다.
몸은 앉아 있으나, 색은 흐르고 먹은 숨을 쉰다. 붉은색은 삶의 온도, 청록은 시간과 호흡, 금빛은 정신의 각성을 상징한다. 한 획은 평면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삶처럼 구부러지고, 흔들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은 분명히 말한다. 획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붓 문화를 ‘Calligraphy’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지만, 과연 한글의 획, 한자의 정신, 먹의 철학, 여백의 사유가 서구의 개념어 하나로 온전히 설명될 수 있었는가. 답은 분명하다. 아니다. K-그라피K-Graphy는 번역어도, 차용도 아니다. 그것은 이름을 되찾는 선언이며, 문화적 주권을 회복하는 행위다.
K-그라피에서 획은 글자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획은 몸이고 호흡이며 사유의 흔적이다. 먹은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밀도이고, 색은 장식이 아니라 정신이 확장되는 방향이다.
문자에서 출발하지만 문자에 갇히지 않고, 회화와 닮았으나 회화로 환원되지 않으며, 수행에서 비롯되었으되 특정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K-그라피는 ‘쓰는 예술’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예술’이다.
추상 표현주의 이후, 동양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의 획을 세계 무대에 올리게 된다. K-그라피에는 언어 장벽이 없다. 글자를 몰라도 감각으로 이해되는 보편적 시각 언어이며, 과잉 정보의 시대 속에서 덜 말하고 더 느끼는 예술로 작동한다.
K-POP 이후, K-그라피는 사유의 한류가 될 것이다. 한 획으로 사람을 만들고, 사람으로 다시 세계를 써 내려가는 예술. 그것이 K-그라피다.
K-그라피K-Graphy는
개념이 아니라 장르 선언이고
설명이 아니라 기록이며
기획이 아니라 출발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