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기자 |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임기 첫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출범 당시 대한민국을 둘러싼 외교 환경은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공급망을 중심으로 더욱 치열해졌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동맹 관계마저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외교 현실을 예고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 북·러 밀착,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외교는 다층적 도전에 직면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Pragmatic Diplomacy)'를 외교 기조로 제시했다. 그러나 실용외교는 선언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결국 외교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며 국가의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는 주체는 외교부다. 지난 1년을 평가할 때 주목해야 할 지점 역시 정부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외교부가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에 있다.
미·중 경쟁, 트럼프 2기, 중동 전쟁, 공급망 재편의 격랑 속 대한민국 외교부는 무엇을 해냈나
국제질서의 구조적 압박 속 외교부의 전략적 대응
국제정치학의 신현실주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국제질서는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는 무정부적 구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도 관세와 방위비 분담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거래주의 외교(Transactional Diplomacy)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은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해야 하지만, 경제 측면에서는 중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외교부는 진영 논리에 함몰되기보다 국익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균형을 추구했다.
특히 반도체, AI, 첨단 제조업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동맹과 경제 협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복합적 외교를 전개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가 생존과 직결된 경제안보 외교였다.
한미동맹을 경제안보 자산으로 전환하다
지난 1년간 외교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한미동맹을 기존의 군사안보 중심 관계에서 경제안보 협력 체제로 확장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관세 압박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를 단순히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조선·제조업 경쟁력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접근을 시도했다.
특히 경주 APEC 준비 과정, 주요 정상외교를 통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미국 측에 적극 설명하고,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협력 확대와 조선 협력 논의를 구체화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해 협상력을 높인 실용외교의 결과로 평가된다.
외교부는 안보를 비용이 아닌 국가 경쟁력과 산업 성장의 레버리지로 전환하는 새로운 외교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글로벌 사우스 외교, 새로운 성장축을 개척하다
이재명 정부 외교의 또 다른 특징은 특정 진영에 편중되지 않는 외교 다변화 전략이다.
외교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실용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인도, 베트남,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협력을 적극 확대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 관계 확대가 아니라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망 외교의 일환이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자 첨단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한국 기업의 핵심 생산기지로 자리 잡고 있다.
외교부는 이러한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반도체, 핵심광물, 첨단 제조업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고 한국 경제의 대외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포스트 차이나(Post-China)' 시대를 대비한 중장기 국가 전략으로 평가된다.
중동 위기와 한반도 정세 속 위기관리 능력 입증
2025년과 2026년 국제사회는 중동 위기와 에너지 안보 불안이라는 새로운 변수에 직면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외교부는 재외국민 보호와 선박 안전 확보에 집중하며 위기관리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다수 국가와의 외교 채널을 활용한 정보 수집과 상황 대응은 외교부가 단순한 외교 협상 기관을 넘어 국가 위기관리 체계의 핵심 축임을 보여주었다.
대북 정책에서도 외교부의 역할은 중요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공식화하고 북·러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도 외교부는 무조건적인 대결 구도 대신 평화공존과 긴장관리라는 원칙을 유지했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외교적 공간을 유지하려는 노력 자체가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비한 전략적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가 경제를 움직이다
과거 외교는 정치와 안보의 영역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외교가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경제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증시에서 조선, 방산, 원전, 인프라 산업이 강세를 보인 배경에도 외교부의 통상외교와 경제안보 외교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의 조선 협력 확대, 글로벌 방산 수출 지원, 공급망 다변화 외교는 관련 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했다. 또한 주요국 정상외교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과 국가 신뢰도를 적극 알린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결국 외교는 국가 브랜드와 투자 환경, 기업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 정책의 연장선이 되고 있다.
실용외교의 지속가능성이 관건
국내 정치의 양극화는 외교 정책의 지속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지적된다. 또한 북한의 강경 노선과 북·러 협력 심화는 한반도 평화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 여전히 큰 장애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지난 1년은 외교부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시기였다. 특히 외교부는 전통적인 외교 업무를 넘어 경제안보, 공급망, 산업 경쟁력, 투자 환경, 위기관리까지 아우르는 국가 전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의 외교적 성과는 특정 정상의 외교 이벤트나 정치적 성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이면에는 국제질서 변화의 흐름을 읽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 외교부의 전략적 판단과 실행 역량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시대,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익을 지키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외교 역량, 그리고 그 중심에서 국가 전략을 설계하는 외교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