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주한이란대사관이 전한 하메네이의 유산과 이란의 국가 서사

- 1989년 이후 국가 발전상 담은 공식 자료 국내 배포… "이란의 미래는 국민 스스로 만든다"
- 독립·과학기술·국방력·팔레스타인 지지까지… 이란 최고지도자의 정치철학 총정리
- 중동 정세 재편 속 이란이 국제사회에 전하려는 전략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주한이란대사관이 최근 국내 언론에 배포한 「Iran: When History Defied Expectations — Four Decades of Ayatollah Khamenei's Leadership and Iran's Path」는 단순한 추모 성격의 자료가 아니다. 이 문서는 1989년 이후 36년간 이어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Seyyed Ali Khamenei) 최고지도자의 통치 철학을 정리하는 동시에, 오늘날 이란이 국제사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국가 정체성과 외교 노선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전략적 메시지로 읽힌다.

 

특히 문서는 서방의 시각에서 형성된 이란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반박하며, 경제제재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과학기술 발전과 자주국방을 이뤄낸 '회복력(Resilience)의 국가'라는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최고지도자 교체 이후에도 이란의 국가 철학과 외교 기조에는 연속성이 유지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설명하기 위한 일환으로 볼 수 있다.

 

 

1989년의 비관론을 넘어…'역사는 예상을 뒤집었다'

문서는 1989년 이슬람공화국 창설자의 서거 당시 국제사회가 이란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던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 직후의 경제 재건, 급변하는 국제질서, 그리고 대외 압력이 동시에 몰려오던 시기, 국제사회는 이란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지난 30여 년의 역사가 이러한 예측을 뒤집었다고 평가한다.

 

문서는 이란이 광범위한 경제제재와 안보 위기, 역내 분쟁, 테러,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국가 시스템을 유지했으며, 과학기술과 산업 역량을 발전시켜 서아시아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장기적 국가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 문서의 핵심 논지이다.

 

'독립은 고립이 아니다'…주권 중심 외교 철학 강조

문서에서 가장 강조되는 개념은 '독립(Independence)'이다.

 

하메네이의 독립 철학을 국제사회와의 단절이나 고립이 아닌, 외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로 정의한다. 이는 국가 존엄과 자립, 국민 참여, 국내 역량에 대한 신뢰를 국가 운영의 핵심 가치로 삼는 이란의 외교 철학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표현이 이란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과 맥을 같이하며, 대외적으로는 반(反)세계화가 아니라 주권국가 간의 대등한 국제질서를 지향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고 분석된다.

 

'석유국가'를 넘어 '지식국가'를 지향하다

하메네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을 제시한다.

 

하메네이는 "국가의 미래는 천연자원이 아니라 지식과 혁신, 인적 자본이 결정한다"는 철학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으며, 대학과 연구기관, 지식기반 산업,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이란이 나노기술, 의료과학,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아시아의 선도 국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는 것이 이 문서의 평가이다.

이는 국제사회가 이란을 단순한 에너지 자원국으로 인식하는 기존 시각을 넘어, 과학기술 역량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내세우려는 전략적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팔레스타인과 자주국방…변하지 않는 외교 원칙

외교정책과 안보 분야에서는 국가주권 수호, 강대국 중심 질서에 대한 반대, 팔레스타인 국민에 대한 지지, 그리고 지역 국가의 자결권이 핵심 원칙으로 제시된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정의와 민족의 권리, 점령 반대의 문제로 규정하며, 이러한 입장이 이란 외교의 지속적인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란-이라크 전쟁의 경험을 토대로 국가 안보는 자국의 군사력과 억지력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방위력 강화가 추진됐다고 소개한다.

 

'위기관리의 리더십'…안정을 유지한 국가 운영

문서는 하메네이 지도력의 특징으로 전략적 인내와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한다.

경제제재와 국제적 압박, 지역 분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충동적 대응보다 장기적 전략과 신중한 의사결정을 유지함으로써 국가 안정을 지켜냈다는 것이 이란 정부의 설명이다.

 

문화 역시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축으로 제시된다. 꾸란 연구와 페르시아 문학, 문화적 정체성,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강조는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는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하메네이의 국가관을 보여주는 요소로 소개된다.

 

2026년 2월 28일…'순교'로 이어진 국가 서사

문서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2026년 2월 28일 미국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서술하면서, 이 사건을 단순한 정치지도자의 죽음이 아닌 '순교(Martyrdom)'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란 사회에서 순교는 신앙과 국가, 원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최고의 가치로 이해되며, 문서는 그의 죽음이 오히려 국민적 결속과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서술은 군사적 사건을 정치적 패배가 아닌 국가적 회복력과 정신적 유산으로 재해석하는 이란 특유의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이란이 이번 자료를 통해 국제사회에 전하려는 메시지

주한이란대사관이 배포한 이번 자료는 단순한 추모 문건을 넘어, 이란의 국가 철학과 외교 노선을 국제사회에 설명하기 위한 성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문서 전반에는 세 가지 핵심 메시지가 일관되게 제시된다.

 

  • 첫째, 최고지도자의 부재에도 국가 체제와 정책의 연속성은 유지되며, 이란의 정치·외교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 둘째, 장기간의 경제제재와 국제적 압박 속에서도 과학기술 혁신과 자주국방, 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국가 발전을 이어왔다는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을 천연자원이 아닌 지식과 혁신, 인적 역량에서 찾고 있다는 이란의 발전 전략을 함께 보여준다.
  • 셋째, 문서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독립(Independence)'은 국제사회와의 고립이나 단절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좌우되지 않는 주권적 의사결정과 국가 자율성을 의미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이란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온 자주외교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종합하면 이번 자료는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생애와 정치적 유산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에도 이란이 자주외교와 전략적 자율성,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 발전 노선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정책적 연속성을 대외적으로 설명하려는 공공외교적 성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본 기사에서 소개한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해석은 주한이란대사관이 배포한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반영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