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7월 16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은 국제회의와 양자외교 일정을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질의응답에서는 한미 경제안보 현안인 '쿠팡 문제'가 사실상 브리핑의 중심 의제로 부상했다. 외교부는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국내 법치 원칙을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최근 한미 관계를 둘러싼 경제·통상 현안이 외교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브리핑은 문화외교와 전략적 양자협력의 확대, 경제안보 현안에 대한 외교적 대응, 그리고 중동과 동북아를 둘러싼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한 안정적 관리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우리 외교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문화외교의 국제적 위상 강화
조현 외교장관은 오는 18일 방한하는 칼레드 알-아나니(Khaled El-Enany)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만찬을 갖고,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와 한-유네스코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화유산 보존을 넘어 국제규범 형성과 문화외교의 플랫폼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문화유산은 관광이나 문화정책의 영역을 넘어 외교적 영향력과 국가브랜드를 강화하는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유네스코와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9년 만의 그리스 외교장관 방한…전략적 협력의 지평 확대
오는 20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그리스 외교장관회담도 주목할 만한 일정이다. 이번 회담은 조현 외교부 장관 취임 이후 양국 간 첫 외교장관 회담인 동시에, 그리스 외교장관의 공식 방한으로는 9년 만에 성사되는 양자 외교 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한국과 그리스는 1961년 수교 이후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에는 해운·조선·에너지·국제기구 협력 등 전략 분야에서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상선 보유국인 그리스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경쟁력을 가진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과 해양안보, 친환경 선박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크다. 이번 회담 역시 이러한 전략적 협력 의제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리핑의 중심은 '쿠팡'…외교 현안으로 부상한 경제안보
외교부는 전날 강경화 주미대사의 발언을 재확인하며 "쿠팡 문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장기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아웃리치 활동을 이어가고, 이번 사안이 한미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외교부는 특히 한국 정부가 특정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으며, 모든 조치가 국내법에 따라 비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핵심 논리로 제시했다. 또한 한미 정상 간 공동 팩트시트(Joint Fact Sheet)에 명시된 비차별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쿠팡'이 보여준 경제안보 외교의 현실
이번 브리핑의 실질적인 핵심은 단연 쿠팡 문제였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제기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규제 문제, 그리고 향후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에 집중됐다.
외교부는 "쿠팡 문제가 당초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기본 원칙은 변함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 첫째, 정부는 특정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 둘째, 모든 조사와 행정조치는 대한민국 국내법에 따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셋째, 한미 정상 간 공동 팩트시트(Joint Fact Sheet)에 명시된 미국 디지털기업에 대한 비차별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업 규제 문제가 아니라 법치주의와 동맹 관리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접근으로 해석된다.
미국 중간선거와 경제안보의 정치화
외교부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응 전략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국 국내 정치가 한미 경제 현안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미국에서는 선거 국면마다 자국 산업 보호와 해외 기업 규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과 공급망 문제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 관심을 갖는 의제로 자리 잡고 있어, 경제 현안이 외교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환경에서 외교부가 반복적으로 언급한 '아웃리치(Outreach)'는 단순한 정책 설명이나 해명을 넘어, 미국 의회와 행정부 등 주요 정책결정권자들을 대상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정책적 공감대를 확대함으로써, 통상 현안이 외교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략적 상쇄'를 통한 동맹 관리
이번 브리핑에서 주목할 부분은 외교부가 쿠팡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선과 방산 협력을 함께 언급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함 건조와 조선 협력 확대를 언급한 상황에서 외교부는 한미 간에는 디지털 플랫폼 문제보다 훨씬 큰 전략적 협력 의제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경제·통상 분야의 개별 갈등이 동맹 전체를 흔들지 않도록 안보와 산업 협력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적 상쇄(Strategic Offset)'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국제정치에서 동맹은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기보다 상호 연계해 관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보다 입체적인 협상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과 대만…원칙 중심의 균형 외교
외교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 고조와 관련해 전 중동 공관에 특별 안전지침을 하달하고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대응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정부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한편 중국 정부가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의 대만 관련 논의를 비판한 데 대해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 답변은 한·미·일 공조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외교적 소통 공간도 확보하려는 한국 외교의 신중한 접근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