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21대 국회가 마무리되었다. 22대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과 대통령은 국민들의 바램도 마다하고, 일체의 변화를 거부하고,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일조차 거부권을 행사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합이라는 이름 하에 각기 개개인이 헌법기관이요, 국민의 대표인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의 일사분란한 당의 꼭두각시 놀음은 혀를 차게 한다.
야당은 야당대로 22대 국회에서 21대국회에서 폐기된 특별법과 특검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복수혈전을 다짐하고 있다. 당연히 재 추진되어야 함에도 국민의 한사람으로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고싶은 마음이 일체 없다. 쏟아지는 Gossip성 기사에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지쳐 가고, 국민들의 생계는 더욱 막막해 진다.
때마침 성서를 읽다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기록된 부분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죽음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고, 스스로도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도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밀알’ 은 사실 그저 곡식의 낱알에 지나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 땅속 깊은 어두움, 그 숨 막히는 공간에 자신을 맡기고, 스스로 부서짐을 받아들이면서 땅속의 양분들과 융합하여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씨앗 자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본모습이 처연하게 부서짐으로써 드디어 꽃으로, 향기로, 열매로 온전히 새로운 세상을 구현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은 두렵고 불안하며 불편한 시간을 받아들임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때로 놀라운 생명력을 낳는 은총의 여정이 되기도 한다. 오로지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하며 이를 집요하게 움켜쥐고 유지한다면, 자기 보호와 방어는 일시적으로는 이루어지겠지만 그 어떤 창조의 힘도 개입할 수 없다는 교훈을 새기며 집권여당과 윤 대통령의 미래의 모습을 점쳐본다.
5월은 높은 구름 사이로 유난히 푸른 하늘이 여러 날 보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노을이 붉었다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이 너무 신비로워서 멍하니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날들이 많았었다. 헤르만 헷세의 시에서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두가 혼자다.’ 라는 시가 생각 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요히 좌선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상하다, 밤의 숲 속은 모든 것으로 연결되어 있고, 밤에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동다송이나 한국의 다서에서 차한잔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무념, 무상의 마음을 갖을 수 있다 하였다.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은 바로 무소유의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다. 맑은 물도 정성껏 음미하면 차보다 달고, 아무리 좋은 차도 욕심이 가득차서 마시면 차의 맛을 알기 어렵다. 고급 차보다 중요한 것은 맑은 마음이지만 마음은 볼 수 없고 찻잎은 볼 수 있기에, 마음을 다스리는 자세로 차의 싹 만을 골라 만든 차를 마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빈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마시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차는 중국에서부터 전래되었다. 중국 역사속 수많은 황제들은 차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차를 가장 귀하게 여긴 애차인(愛茶人)을 꼽으라면 송나라 휘종과 청나라 건륭제 인 것 같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온갖 명차를 다 음미했을 터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호한 차는 건륭제의 경우에는 보이차였고, 휘종의 경우에는 백차였다.
송나라 휘종은 차에 관한 전문서적 <차론(茶論)>을 쓰기도 하였는데 차론에서 “백차는 독특한 품종이다. 다른 차와 전혀 다르다. 잎이 보석처럼 얇고 투명하고 깊은 산 절벽에 한두 그루 우연히 자랄 뿐 사람이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백차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몇 명 안 되고, 차나무도 몇 그루 안 되고, 찻잎의 수확량도 너무 적은 데다가, 한 번 실수하면 찻잎이 망가지니, 귀하디 귀한 보물같은 차”라고 언급하고 있다.
백차(白茶)는 흰 백에 차 차(茶)를 써서 백차, 화이트 티라고 하는데, 불을 거치지 않았다 해서 백차라고도 하고, 흰 솜털이 찻잎에 가득 덮여 있다 해서 백차라고도 한다. 보통은 차를 만들 때 찻잎을 비벼서 향기분자를 터트리기도 하고, 또 불에 여러 번 덖어서 불 맛을 입혀서 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도 하는데 백차는 찻잎을 비비거나 불에 덖는 과정이 없는 차로서 찻잎을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 펼쳐 말리고 70~80도의 은근한 불로 건조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굉장히 맑고 산뜻한 차로서 여름에 가장 마시기 좋은 차다.
“백차는 1년이면 차로 마시고, 3년이면 약으로 먹으며, 7년이면 보물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햇차로 마셔도 좋고, 오래 익혀서 마셔도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백차를 오래 보관할 때는 보이차처럼 증기를 쐬고 맷돌로 눌러서 병차(둥글게 압착한 차)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수십년 된 백차를 노백차라고 하고, 간혹 마시는 분의 몸과 차의 성질이 맞으면 오랜 병을 고치기도 한다. 백차는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카테킨 함량이 가장 높은 차로 몸의 체열을 내려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고, 피부를 좋게 해준다. 백차는 누구나 마셔도 좋고, 특히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이나 수험생, 몸에 열이 많은 사람, 또 명상과 채식 등 수행하는 분들이 들기 좋은 차로 알려져 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가인여차(佳人如茶)’ 라고도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차를 닮았다는 뜻으로 차를 마시며, 차를 닮아 가면, 대자연의 품으로 회귀하여 숲의 향기를 품은 사람, 나이가 들수록 더 부드럽고 겸손하고 품이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야생 고차수 보이차를 소개받고 여럿이 마시게 되었다.
고차수란 차나무는 100년 이상 된 차나무로 통상 600-700년된 차나무를 지칭한다. 차나무 나이가 600년을 넘어 1000년이 넘었다고 하면 왠지 차가 메마를 것 같고, 야생차라고 하면 좀 더 거칠고 쓸 것 같다고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오래된 차나무는 정 반대다. 100살, 500살, 1000살이 넘은 고차수일수록 차는 더욱 달고, 부드럽고, 천연 원시림의 야생 차일수록 더욱 상쾌하고 향기롭다.
야생 고차수 보이차를 맛보고 싶은 분이라면 세 개의 차산지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데, 그 이름은 무량산, 대설산, 애뢰산이다. 산이 높고 운무가 발달한 곳에서 좋은 차가 난다고 한다. 중국 운남에서 귀주에 펼쳐진 큰 산들을 포괄하여 총칭 ‘운귀고원’이라고 하는데 ‘무량산’, ‘대설산’, ‘애뢰산’은 그 중 일부이며, 해발 3000m가 넘는 산들이다. ‘운귀고원’은 2억 년 전에 바다가 융기한 곳으로 4기 빙하기 때 빙하의 피해를 입지 않아서 원 생태 식물과 동물의 보고가 되었다고 알려진 곳이다. 차나무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이곳의 차나무가 세계 차나무의 원산지로 밝혀진 바 있다.
‘무량산’은 이 차 산 중에서도 가장 높고 야생 차나무 군락지의 면적도 가장 넓은 곳으로 산이 높고 계곡이 깊고 울창한 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예로부터 란창강 상류에서 가장 유명한 차산이다. 중국 삼국시대부터 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해발 1600m에서 2800m 사이에 야생 차나무가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수령이 1000년이 넘는 야생 차나무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야생차는 물론이고, 재배 차든, 현대화된 개량종이든 ‘무량산’은 최초 형태의 차나무 수종이 가장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차나무의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대설산’은 해발 2200m에서 2750m 사이에 천년 야생 고차수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맹고 대설산 1호 차왕수는 수령이 2700년이 넘는데, 높이는 17m, 둘레는 어른 3명이 감싸 안아도 팔이 모자를 만큼 두껍고, 나뭇가지가 펼쳐진 폭이 사방 10여미터에 달하는 대왕수다. 대설산은 원래 삼림이 너무 울창해서 사람은 고사하고, 짐승 한 마리도 비집고 지나가기가 어려울 만큼 빽빽했었는데, 1997년 극심한 가뭄으로 많은 야생 원시목이 고사하면서 밀집한 식물들 사이에 적당한 틈이 생기면서 고차수 군락지가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곳이다.
‘애뢰산’은 원시삼림이 바다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애뢰산’은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차마고도가 지나가고, 차를 실어 나르던 마방과 차상들이 가장 힘들게 건너야 했던 길이 나 있는 산이 바로 ‘애뢰산’이다. 예로부터 사내 한 명이 길을 막고 버티면 1만 명이 와도 그 길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할 만큼 험준한 요새로 해발 3000m 그 요새가 되는 관문에 야생차의 명소 천가채(千家寨)가 위치한다. 천가채 야생 차왕수는 수령 2700년이 넘고 키는 25.6m에 둘레는 3m가 되고 나뭇가지가 펼쳐진 폭이 20m가 넘는 신령한 대왕수로 알려져 있다.
‘무량산’, ‘대설산’, ‘애뢰산 천가채’ 등지는 원 생태 자연보호구역으로 현재는 지정되어 있어, 차나무 채엽이 금지되어 있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곳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무량산’ 천년 야생 고차수 ‘보이생차’는 차 기운이 매우 강하다 하고, 강한 차 기운이 돌면서도 감미롭고 향기로운 차 맛이 은근하고 묵직하게 깔려 있다 한다. ‘무량산 천년 야생 고차수 보이생차를 만나게 되면 면지를 풀기도 전에 야생차 향이 번진다 하고, 보이생차는 25년이 지나야 노차(老茶)가 된다고 한다.
야생 차나무는 찻잎이 크고 두터우며 백호가 발달하지 않아 보이차를 만들면 찻잎이 까맣게 보이고, 수색은 황금색으로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며 약한 고미 뒤에 단맛이 풍부하여 한 모금을 마셔도 입에 단 침이 돌고 물질감이 풍부하다고 한다. 찻물은 식도를 따라 내려가고, 향기는 휘발성이라 기도를 따라 올라오는데 숲 속의 온갖 들꽃 향기와 약초 향기에 Menthol한 방울이 떨어진 듯 상쾌하면서도 머리가 맑아진다고 전한다.
‘무량산 천년 야생 고차수 ‘보이생차’중 ‘병차’(둥글게 긴압한 차)를 해괴(긴압한 차를 풀어내다)하면 병차 표면이 진하다 못해 흑색으로 보이며 윤기가 넘쳐 흐른다. 자사호에서 찻잔으로 떨어지는 찻방울이 등황색으로 맑고 영롱하고 윤기가 흘러 넘쳐 마시는 보석과 같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처럼 뾰족하게 Cutting된 보석은 아니지만, 땅속에 묻혔다가 나온 천년 옥으로 한없이 둥글고 부드럽고, 은근하고 품위가 있는 차다. 차를 한 잔 음미하고 고요히 앉아 있으면 차 기운이 저 아래 땅 밑에서부터 묵직하게 밀려 올라오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종소리의 파동처럼 차를 마신 후에 차 기운이 온몸을 휘어 감으면서 온기가 돌게 된다.
백년고차 보이
청나라 황제들은 차를 몹시 좋아한 애차인(愛茶人) 들이었다고 언급한바 있다. 보이차의 시작은 옹정제가 열었다고 알려져 있다. 옹정제는 스트레스가 많은 황제로 황위에 오르기까지 수십 명의 왕자들과 무한경쟁을 해야만 했다. 아마도 차를 마시지 않았다면 스트레스를 풀 방도가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옹정제는 윈난 시솽반나를 정벌하고 ‘보이부’를 설치했는데, 이때, 보이차를 공품으로 바치도록 지정하고 차와 말을 바꾸던 차마호시(車馬互市) 대신 차세금을 징수하고 보이차를 거래하게 하였다. 보이차의 이름도 ‘보이부’에서 유래한 것이다.
보이차의 시작은 옹정제이나 보이차의 황금시대는 건륭제가 열었다. ‘군주는 하루라도 차가 없어서는 안 된다.(君不可一日無茶)’고 이야기할 만큼 차 마니아였던 건륭은 청나라 황제 중 88세까지 장수한 황제로 60년동안 재위했고, 차와 관련해서 수백 편의 시와 그림을 남겼다. 건륭제는 둥글고 단단한 보이차가 보름달처럼 아름답고, 황금빛이 도는 탕 색과 함께 차 향이 풍부하며, 차기운이 묵직하고 품위가 있다고 찬탄하기도 하였다.
중국 자금성 ‘고궁박물관’에는 청나라 때에 공차로 바쳤던 윈난 보이차 공품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는 1960년대에 자금성을 보수하다가 황실의 차창고에서 많은 명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다. 다른 지역의 공차는 찻잎이 모두 먼지가 가득하고 부패해 있었는데, 오직 보이차만이 단단하게 압병된 튼실한 자태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어 감동을 안겨주었다 한다.
백년의 세월을 이겨내는 힘, 강한 기운과 품위를 지닌 보이차는 차산환경(茶山環境)과 나무의 수령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보이차는 나무 높이만큼 뿌리가 깊어 홍토의 기운을 품게 되고, 천연원시림 고산지대의 태양에너지와 산기운을 듬뿍 머금고 자란다. 윈난성 시솽반나에는 중앙을 가로지르며 란창강이 길게 흐르는데, 란창강의 동쪽 맹랍 지역에 ‘고육대 차산’이 분포해 있고, 서쪽 맹해 지역 역시 여러 유명 차산들이 분포해 있다.
‘고육대 차산’에서 자란 보이차는 청나라 완복의 <보이차기(普이茶記)> 기록에 의하면 “보이차는 천하에 두루 이름이 알려졌 있는데 다른 어떤 차보다 맛이 깊어서 연경에서 특별히 소중하게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고, ‘유락’, ‘혁등’, ‘의방’, ‘망지’, ‘만전’, ‘만살’ 등에서 생산된다.”고 하였다. 보이차가 공차(貢茶)가 되면서 ‘의방 차산’에 관부가 설치되고 보이차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후 황실에서 파견한 관료의 부정부패로 청나라 말기, 소수민족 차농들이 봉기하여 ‘의방차산’의 관부는 불타었고, 차산이 크게 훼손되어, 청 말에 ‘이무’(易武)지역으로 관부가 옮겨진 이후, 다시 한번 보이차가 흥성하게 된다. 유명한 차창과 차상들이 ‘이무’를 중심으로 보이차를 거래하였기에 고육대차산에서 지명도가 낮은 ‘만살’은 제하게 되었고, 대신 ‘이무’를 넣게 되었다.
이로부터 ‘이무정산(易武正山)’이란 호칭도 생겼는데, 정산(正山)은 정통의 산, 원조가 되는 산이란 뜻이다. 이무지역은 보이 공차의 중심지이며, 차마고도의 출발지다. 말굽에 밟혀 반들반들 닳아지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돌길을 걷다 보면 마방들의 땀과 눈물과 환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골동 보이차로 억대를 호가한다는 호급(號級) 보이차는 대체로 ‘이무지역’에서 만들어진 차다.
현재, 보이차의 중심은 란창강 서쪽의 맹해 지역이다. 이곳에는 포랑, 남나, 맹송, 파사, 파달 등 유명한 차산이 산재하는데, 워낙 여러 차산에 수백 년 된 고차수(古茶樹) 다원이 분포해 있어서 6대 차산이라 고도 하고 8대 차산, 10대 차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중 특히 ‘포랑산’은 그 유명한 라오반장 보이차가 생산되는 명산이다. ‘포랑산’ 고차수 보이차는 차기운이 강하고, 꽉 찬 맛에 활력이 넘치며 후운이 오래 남는다 한다. ‘남나산’은 교목형 대엽종 차나무의 원산지라고 할 만큼 차 재배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고차수 다원 면적이 넓은 유명 차산중 하나다. ‘남나산’ 고차수 보이차는 차기운이 부드럽고 은은한 난향과 밀향이 감미롭고 매끄럽다고 한다.
‘맹송산’은 맹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차산으로 유명한데, ‘맹송산’ 고차수 보이차는 향과 맛과 기운이 조화롭고 해발이 높은 까닭에 상쾌하고 시원한 구감이 특징이다. ‘파달산’은 맹해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는데, 본래 중국 국가공인 최초의 1800년이 넘은 차왕수(茶王樹)가 있어서 차인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으로, 오랜 세월이 흐르며 고차수가 고사해서 지금은 고사목을 진승차창 의 진열실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윈난성 여섯 개 차산의 험난한 길을 돌아 300년, 500년 수령의 고차수 봄 첫물 찻잎만을 100% 병배하여 만든 보이차가 ‘육산합일(六山合一)’이다. 병배란 다양한 찻잎을 섞는다는 뜻으로 블렌딩 푸얼 티로 이해하면 되는데, 병배는 무조건 여러 차산의 찻잎을 혼합하거나 일정한 비율로 섞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미각과 후각이 발달하고 후천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차 전문가만이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차로 매우 섬세하고 어려운 차라고 한다.
육대차산에서 나는 차는 기질과 맛이 차산마다 다르므로 병배가 잘 이루어지면 차기운의 고저장단이 조화를 이루어 맛과 향과 후운이 풍부하게 되며, 1포 2포 3포 차를 우릴 때마다 폭포처럼 활력이 넘치고 상쾌하고 우아하고 다채롭다고 한다. ‘육산합일’은 보이차의 명작 중 하나다.
차를 품평하는 용어에 ‘차기패도(茶氣覇道)’라는 말이 있다. 이는 차의 기운에 패왕의 강렬한 기세가 있다는 뜻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통일군주의 강렬한 기세를 보유한 ‘라오반장’은 차기패도를 대표하는 차로서 보이차의 황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오반장’ 보이차 한 잔에 모공이 열리며 땀이 훅 솟고 척추를 타고 머리 위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눈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게 ‘라오반장’의 특징이다. 더욱이, 차기가 충만해서 맛이 묵직하고 꽉 찬 맛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도도한 물의 힘이 전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라오반장은 보이차 중에서 명품 보이차로, 최고가를 갱신하며 차인이면 누구나 맛보고 싶어 하는 차다. 남쪽에는 라오반장(老班章), 북쪽에는 빙다오(氷島)가 유명한데, 남과 북의 구별은 보이차 산지인 윈난성 시솽반나의 북쪽과 남쪽을 지칭하는 것이다. 빙다오는 화려한 향으로 사랑을 받고, 라오반장은 도도한 차의 기운으로 칭송을 받는다.
보이차의 황제 라오반장은 윈난 시솽반나 멍하이(龐海) ‘뿌랑산’(布朗山포랑산) 라오반장촌에서 생산되며, ‘뿌랑산’에는 라오반장(老班章)촌, 신반장(新班章)촌, 반장(班章)촌, 라오만어(老曼峨)촌 등 지역에서 각각의 개성을 지닌 보이차가 생산된다. 보이차는 차산환경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차산의 마을 이름이 곧 보이차의 상표가 되기도 한다.
‘뿌랑산’이 보이차 산지로 유명해진 것은 해발 1700m 고산지대에 고차수 다원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며, 평균 수령 300~500년 이상 된 고차수들이 원시삼림 속에 울창하게 분포해 있고, 청나라 때에 너무 궁벽한 곳이라 관료들의 눈에 들지 않았기에 오히려 고차수 다원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오반장촌은 본래 뿌랑족(포랑족)이 차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는데, 훗날 멀리서 이주해 온 하니족에게 마을을 양보하였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라오반장촌은 차나무 보호를 위해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외부의 찻잎이 라오반장촌으로 들어와서 라오반장 찻잎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마을 입구에는 공안 복장의 경비원이 보초를 서고, 라오반장촌에는 114가구가 있는데, 대문 앞에 노반장 1호집, 2호집, 3호집… 이렇게 나란히 문패가 달려 있다.
라오반장촌에는 별장 같은 집들이 빼곡히 눈에 들어오는데, 라오반장 보이차의 급부상으로 모두들 부유해지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집을 새로 건축하고 외제차를 구입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늦게 집을 짓는 사람일수록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짓는다고 하는데, 첩첩산중의 오지에서 전 세계 차인들의 주목을 받는 보이차의 성지로 부상하기까지, 라오반장촌 20여 년의 역사가 바로 현대 보이차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니족’은 라오반장 토착민이 아니고 먼 곳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으로 고유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어 혼례복에 자수를 놓아 ‘하니족’의 역사와 이주경로를 남겼다고 한다. 지금은 자수도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만, ‘하니족은 조선족이 있는 백두산에서 이주해 왔다’는 설이 있다. 옛날, 백두산 지역에서 윈난성으로 이주해 왔기에 이 지역에 색동무늬나 백설기떡 등 친근한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직도 윈난에 많이 남아있다.
라오반장 보이차는 고가로 보이차계의 ‘명품’이다. 357g 차 한 편에 산지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데, 중국경제의 급성장으로 ‘차이니즈 리치’가 증가하면서 중국 현지의 수요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가격상승이 천정부지다. 라오반장은 앞으로도 더욱 큰 가격상승이 예측되고 있는데, 누구나 마셔보고 싶은 차이지만, 아무나 마실 수 없는 차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보이차계의 ‘명품’으로 불리는 라오반장.
백 년 된 차나무는 백 년 된 찻잎의 맛을 주고, 오백 년 된 차나무는 오백 년 된 찻잎의 맛을 준다. 나이가 오래될수록 혹시 차맛이 더 쓰거나 윤기가 없지 않을까?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이차의 세계에서 보이 차수의 나이와 차 맛은 비례한다. 고차수일수록 더 신선하고 더 감미롭고 더 윤기가 돈다.
노자는 ‘도는 갓난아기와 같다’고 하였는데, 젊어서 이 말이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다. 〈도덕경〉 첫 페이지에서 ‘도가도비상도’,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는 형이상학적 선언으로 철학하는 사람들을 뒤흔들었던 노자의 말은 ‘나이가 들수록 신선하다’는 말로도 들린다.
차를 품평할 때에 품(品)이라는 글자를 보면 세 개의 입(口)이 모여 차를 음미하는 것으로 가르킨다. 차 한 잔을 세 번으로 나눠 음미한다는 뜻도 되고, 세 명 이상의 많은 사람이 모여 차를 품평한다는 뜻도 된다. 중국 시학에서는 시를 품평하는 것을 ‘시품’이라 하고, ‘시품’은 ‘인품’을 닮는다고 한다. 차를 만들고 우리다 보면 차 한 편에도 시와 노래가 담기게 되고, 차를 만지는 사람의 성품도 녹아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차품’(茶品), ‘시품’(詩品), ‘인품’(人品)이 서로를 닮아 감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다.
차는 색깔, 향기, 맛, 기운으로 품평을 하게 되는데, 색이 맑고 영롱하면서 윤기가 흐르는지, 향기와 맛이 달고 신선하고 풍부한지, 차를 마신 후 몸으로 느끼는 기운이 살아있고, 여운이 끝이 없는지 차를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정석이다.
고차수는 큰 찻잎에 영양소를 농축하여 사람을 살리고, 사람뿐만 아니라 곤충도 한 잎 같이 먹고, 만물을 먹여 살리는 차나무다. 그런 차나무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차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중국 속담중 ‘우물을 마실 때에는 우물 판 사람의 공을 잊지 말라’는 말과 함께 차나무에 감사하는 마음 역시 갖아야 한다. 수 백 년 동안 사람들이 찻잎을 따 가져가도 나무라지 않고, 아낌없이 찻잎을 내어주는 차나무의 공덕에 무한 감사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나 차나무를 길러 낸 푸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과 맑은 이슬, 붉은 토질에 감사하고 싶다. 차나무를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차농들의 노고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마실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찻잎은 이른 봄에 따는데, 이를 우리는 우전차라고 해서 곡우절 전에 딴 차가 좋은 차이지만, 윈난은 아열대 지역이므로 곡우보다 한 절기 앞선 청명절 즈음이 되면 봄차 생산이 이루어진다. 이른 봄에 처음 차 싹이 솟아나올 때 만든 차를 첫물차라고 하는데 날씨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3월 중순이후에 만든다. 한해의 첫물차를 마시는 기쁨은 자연이 준 고단한 환경을 차나무가 극복하고 우리에게 내어주는 차나무 자신의 희생과 사랑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