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왕의 창과 와신상담이 주는 교훈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오왕(吳王)의 창(槍)과 와신상담 교훈

 

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8주년, 한일 두나라가 국교를 정상화 한지 58주년이 되는 해였다.

 

삼일절은 그해 들어 가장 먼저 열리는 경축일이라는 점에서 역대 정권에서도 한 해의 국정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일,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 3월 1일 윤 대통령의 삼일절 경축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미래지향적인 측면에 방점을 찍은 경축사라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으나 국민 대부분은 일본이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이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도 않고 있으며,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한 무절제하고 치욕적인 관계개선 의지에 대한 일종의 찬사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 국론을 분열시키는 또다른 계기가 된 듯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발표한 삼일절 대통령 경축사에 대한 평가 역시 각기 다른 형태의 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사회가 건전한 비판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기 보다는 두 단체가 서로 다른 이념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변은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 망언”이라 규정하였고, 한변은 “삼일절에 기하여야 하는 것은 대통령의 기념사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시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진 선열들의 불굴의 자유와 독립정신”이라며 미래지향적인 경축사라며 상반된 평가를 하였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이 느끼는 대통령의 삼일절 경축사는 미래지향적인 경축사도 아니었으며, 결코 당당하지도 않았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반성을 촉구하지도 못하였으며, 피해자를 진정으로 보듬는 마음도 전혀 없는 비겁하고 비굴한 언어적 궤변에 불과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며, 결단코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외친 순국선열의 가슴에 피 멍을 다시금 들게 한  경축사로 평가하고 있다.

 

가슴에 응어리진 원한(怨恨)은 어떤 방식으로 든 풀어야 한다. 이러한 원한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원한을 응어리지게 한 상대에게 직접적 앙갚음을 함으로써 푸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한 풀이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소극적인 방법으로서 스스로 한을 참아내는 내향적인 한풀이 방법이 그것이다.

 

대체로 우리 한국사람들은 내향적인 한 풀이를 하려 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잘못에서 기인된 것들도 혼자서 감내하고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우리 한민족에게는 많은 한이 발생하고는 한다.

 

우리 한국인의 민족적 심성을 자세히 인수 분해하여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한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해자가 분명이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고, 더욱더 파렴치한 식민지 사관을 유지 발전시키려는 상황 하에서 말로만 이뤄진 미래지향적 관계개선과 불굴의 자유와 진정한 독립정신은 그 어느 곳에도 자리 할수 없음을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하겠다.

 

이에 비하여 사막이나 유목민족은 외향적인 한풀이를 주로 한다. 상대를 응징하는 방법으로 자살 테러나 폭탄차를 동원한 방법으로서 읽히고 설킨 중동지역의 문제적 근원도 바로 이 외향적 한풀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중동지역뿐만이 아니라, 고대 중국이나 현대 중국에서도 외향적 한 풀이가 자주 나타난다.

 

기원전 춘추시대 월나라에 의해 패망한 오나라의 왕은 자신의 아들인 부차에게 월나라에 복수함으로써 부왕 자신의 원한을 꼭 풀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태자 부차는 12년 동안 나뭇짐 위에서 기거하면서 부왕의 원을 잊지 않고 있다가 끝내 월 왕을 패배시킴으로써 그 원을 외향적으로 푼다. 이번에는 패배한 월 왕이 22년간 쓰디쓴 쓸개를 핥으면서 오나라에게 패배한 원한을 다시 풀고 만다.  “와신상담” 이란 것은 곧 한(恨)의 외향적인 풀이방식인 것이다.

 

또한, 초나라 평왕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한 오자서는 오랜 기간 원한을 품고 있다가 오나라로 망명하여 부차를 부추 켜 초나라를 치고, 이미 죽고 없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친 뒤, 시체에다 삼천번이나 매질을 함으로써 자신의 원한을 풀었기에 “굴묘편시(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뜻함)”라는 말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무서운 원념이 춘추시대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최근 현대 중국에서는 사드 사태로 촉발된 한중간 위기로 한류문화와 한국기업의 중국내 진출과 전파를 막지 않았던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부분이다.

 

오래전 바로 오왕 부차가 와신 끝에 손수 손에 쥐고 원한을 풀었을 한 자 남짓한 청동제 창(槍)이 중국 호북성의 한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는 외신을 접한적이 있었다.

 

우리는 역사를 옛말로 통감이라 칭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을 거울삼아 오늘의 지혜로 받아들인다는 교훈적 의미가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점에 우리가 원한이 얽힌 오월의 창과 와신상담이라는 고어를 통해 받아들인 교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삼일절 경축사에 대한 잘하고, 잘못했다는 상반된 평가를 떠나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순국선열들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스스로 결행한 살신성인의 노력과 현존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 진정한 사과와 배상, 그리고 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층이 느끼는 국민 모두의 원한을 푸는 실천적 방법은 무엇일까?

 

조선조 임진년에 시작되어 7년이나 지속된 기나긴 임진왜란과 병자년에 시작하여 끝내는 임금을 무릎 꿇렸던 병자호란, 그리고 경술년에 시작되어 35년간이라는 국치 중에 쌓였던 그 엄청난 원한을 과연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외향적 방법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의 순국선열들이 가슴에 폭탄을 안고 일제의 원흉을 기꺼이 쓰러뜨렸던 기개를 잊은 건 아닌지 자성해 볼일이다.

 

스스로 반성하지도 않고, 진실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집단과 식민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군사력을 날로 강화하는 일본을 향해 동맹이 웬 말이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대통령의 경축사야 말로 와신상담이라는 기막힌 원한을 해소하는 방법을 잊고 살자고 외치는 것이며, 미래세대의 민족적 번영 역시 절대로 담보할 수 없는 왜곡된 사관과 판단에 기인할 것임을 분명 밝혀 둔다.

 

 

논설위원 이세훈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