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의 삶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갑니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시간의 변화는 자연의 변화에서 그 흐름을 알아 차려야 합니다. 2024년이 시작된지도 며칠 안된 것 같은데 입춘이 지나고 곧 설날과 정월 대보름, 우수가 다가옵니다. 시간적인 용어로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찰나”라는 말입니다. “찰나”는 불교용어로 불가의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에서 나타나는데,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瞬間)의 음역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부파불교의 논서 《아비달마구사론》<세간품>에 의하면 120의 찰나를 1달 찰나(一怛刹那:tat-ksana, 순간의 시간, 약 1.6초), 60달 찰나를 1납박(一臘縛:lava, 頃刻의 뜻, 약 96초), 30납박을 1모호율다(一牟呼栗多:muhūrta, 약 48분), 30모호율다를 1주야(一晝夜:24시간)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에 의하면 1찰나는 75분의 1초(약 0.013초)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우리가 쓸 때에는 정확히 0.013초 혹은 10-18이라는 뜻 없이, 막연하게 매우 짧은 시간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낸다는 것이 사전적 의미이며, 본래 불가의 무상(無常)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리라 봅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최소단위의 시간은 플랑크 시간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고,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이라 했습니다. 과학적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현미경은 빛을 이용해 작은 것을 확대해 볼 수 있는 장치인데, 이 현미경으로 곤충들의 세계를 들여다본 '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존재합니다. 이 영화는 이슬을 마시는 개미, 진딧물을 먹는 무당벌레 등 30여 종 곤충들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보여 주어 일반인들이 곤충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수한 현미경들은 이제 미크론 세계보다 1000분의 1이나 작은 나노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나노의 세계를 넘어 원자나 분자의 미시세계(微視世界)를 직접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각종 현미경은 거의 정지돼 있는 현상만을 확대해 보여줄 뿐입니다.

 

물리학과 화학에서 밝혀내었듯이 미시세계에서는 원자나 분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체상태의 분자는 시속 수천 Km로 날아다니고, 10조 분의 1초에 한 번씩 뒤집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자들은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100조 분의 1초 안에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원자나 분자들의 미시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속의 세계, 즉 '찰나의 세계' 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찰나는 극히 짧은 시간을 이르는 불교 용어라 이미 안내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찰나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기 위해서는 초고속촬영을 해야 합니다. 쉬운 예로, 올림픽경기에서 100m 달리기 선수들의 등수를 가려 내기 위해 골인 지점에서 사진을 1초에 10,000번이나 찍는 경우와 같습니다. 즉 선수들 간의 간격을 0.1㎜ 단위의 차이로 구분해 정확히 등수를 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시의 세계를 보기 위하여, 수십조에서 수 백조 분의 1초 안에 일어나는 찰나의 현상을 보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빠르게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Femto초 레이저는 대략 1000조 분의 1초 동안만 켜졌다 꺼지는 시간 폭을 갖는 펄스 빛을 냅니다. 1999년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아흐메드 즈웨일 교수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겼는데, 그는 1980년대 중반 새로운 형태의 초고속 카메라를 발명한 공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필름을 빨리 돌려 만드는 초고속 카메라가 아니라, 분자가 원자와 원자로 분리되는 순간을 레이저로 관찰하는 초고속 카메라입니다.

 

즈웨일 교수는 자신의 발명품을 들고 요오드화나트륨(NaI)이 요오드(I)와 나트륨(Na)으로 갈라지는 순간을 ‘찍었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1000조분의 1초에 벌어지는 분자들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먼저 펨토초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 봅니다. 펨토초는 1000조분의 1(10-15)초를 말합니다. 10-15를 의미하는 단위명이 펨토(Femto)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1펨토초 동안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도 고작 0.3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10-6m)를 움직일 뿐이며, 우리가 자주 쓰는 ‘눈 깜빡할 시간’이 약 10분의 1초, 총알이 물체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100만분의 5초니 펨토초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시간인 셈입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분자와 원자 세계에서는 펨토초는 기본 단위입니다.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입자들의 움직임, 생체 내에서 효소가 분자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사건이 모두 펨토초 단위에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광합성이 일어날 때 엽록소 분자가 에너지를 전달하는 시간은 약 350펨토 초입니다. 사람이 인식하기도 어려운 이 짧은 시간에 식물은 빛을 받아 에너지로 바꾸고, 저장합니다. 엽록소뿐만이 아닙니다. 효소가 유기물에 산소를 붙이는 시간은 약 150펨토초,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원자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0.1펨토초입니다.

 

펨토초 레이저는 10~50 펨토초 동안만 켜졌다 꺼지는 펄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깜빡깜빡하는 펄스를 분자나 원자에 쏘면 이 펄스는 펨토초 시간동안 만 분자를 만났다가 반사되는데, 이 반사된 빛에 분자의 모습이 담겨있게 되는데, 이는 펨토초만에 찍어내는 카메라인 셈입니다. 펄스를 계속하여 연사하면 펨토초라는 ‘찰나’의 시간 동안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담는 ‘동영상’도 만들 수 있습니다.

 

즈웨일 교수가 만든 초고속 카메라는 바로 이 연속적인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했습니다. 먼저 레이저 펄스로 분자 안에 있는 전자에 에너지를 공급해 들뜬 상태로 만듭니다. 원하는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두 번째 레이저를 쏴 들뜬 전자에서 나오는 빛을 측정합니다. 이 빛의 세기는 분자의 운동과 성질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게 되고, 에너지를 받은 분자가 내는 빛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해 분자의 운동 상태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펨토초 레이저는 빛의 파장이 펨초토 길이로 매우 짧기 때문에 같은 속도를 가진 다른 빛에 비해 진동수가 매우 큽니다. 빛의 에너지 크기는 진동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펨토초 레이저는 다른 레이저에 비해 에너지가 크고 응용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예를 들어 두께가 매우 얇은 첨단소재나 부품을 만들 때 파장이 짧은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하면 세밀한 작업을 훨씬 안전하고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써온 레이저는 파장이 길고 열이 많이 발생해 금속 표면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녹이거나 지저분한 상태로 만들 위험이 있었지만, 펨토초 레이저는 소재에 발생하는 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금속 표면을 깨끗하고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도 펨토초 레이저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보통 수술용으로 많이 쓰이는 일반 레이저는 커다란 조직의 경우, 잘 치료하고 있지만 작은 세포의 경우에는 태워서 죽이거나 손상을 입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작은 크기의 수술도 가능한 이온 치료법이 있긴 하지만 이는 진공 상태에서만 가능해 반도체 같은 물질에만 쓸 수 있기에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하면 펄스의 짧은 파장을 이용해 1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살아있는 세포 1개에 생긴 병까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안과용 각막이식이나 라식수술에도 펨토초 레이저는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2004년 독일의 연구팀은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해 무통 치과치료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소립자 물리학의 세계에서 펨토초 레이저는 ‘구세주’입니다. 우주의 탄생 비밀을 밝혀줄 쿼크나 암 치료에 쓰이는 양성자를 얻기 위해서는 원자나 전자를 가속시켜 충돌을 일으킬 가속기가 필요한데,  가속기가 이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압과 속도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수~수십 km 크기의 가속기가 필요하게 되나, 펨토초 레이저를 증폭하면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압을 걸 수 있어 훨씬 작은 크기의 가속기도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도 광주과학기술원 산하 고등광기술연구소에 펨토초 레이저 시설이 존재하며, 이는 공간도 줄이고 예산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시설이고, 기술입니다.

 

펨토초 펄스 빛을 분자에 조사하면 펨토초 동안만 빛과 분자가 서로 만나게 되고, 분자를 만난 뒤 밖으로 나온 빛은 펨토초 동안 분자와 만난 정보를 그대로 갖게 되는 성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정보를 분석하면 그 시간 동안의 분자 상태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펨토초 동안만 반짝이는 빛을 이용해 대략 1000조 분의 1초마다 사진을 찍을 수 있고, 100조 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분자의 화학반응을 광지연 방식의 펨토초 빛을 이용하면 10장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화학반응 동안 분자들이 서로 결합 혹은 분리되는 현상을 동영상처럼 찍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그동안 음역에 의존하였던 찰나의 세계가 펨토초 레이저에 의하여 찰나의 세계가 보여지는  초고속 촬영기를 제공한 셈입니다.

 

캘리포니아공대의 아메드 즈웨일 교수는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분자 화학반응의 중간 과정을 이 펨토초 촬영기를 이용해 보여 주고 '펨토화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이 공로로 199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하면 나뭇잎이 태양빛 에너지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는 과정, 햇빛에 반사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물체의 영상 빛이 전기신호로 바뀌어 시신경으로 전달되는 과정 등에서 각각 일어나는 분자들의 화학반응 순간도 영화처럼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빛은 망원경을 통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을 보여 주며, 현미경을 통해서는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로부터 미지의 나노 세계까지 보여 주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펨토초보다 1000배나 더 짧게 반짝이는 아토초(100경 분의 1초)의 빛까지 발생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찰나의 세계까지 보여 주는 빛은 앞으로 또 어떤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이제 백세시대를 향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단지 태양의 흐름으로 낮과 밤이 있어 하루를 살았다고 하거나, 하루가 지나갔다고 표현할 뿐입니다. 사실, 100세는 36,500일에 해당하고,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876,000시간에 해당합니다. 참으로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100세의 생멸시간을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여 우리가 살아 있는 시간들을 조금씩 연장해 왔습니다. 점점 더 오래 살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우리의 삶은 찰나의 순간에 태어났다가 찰나의 순간에 사라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고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고해와 고통은 언제나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들고, 사랑과 자비심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이웃에 대한 연민을 잃어버리고, 우리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잃어버리며, 우리는 낯선 이에 대한 친절 역시 잃어버립니다. 작금의 정치인들이, 경제인들이, 또는 많은 폭력과 살인을 하는 자들이 나부터, 나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웃에 대한 연민과 공감, 친절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공허한 말싸움과 폭력적 행위와 이기심만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존재시간은 진정 찰나의 순간입니다. 이 찰나의 시간이 좀 더 사랑의 시간이 되고, 믿음과 기쁨의 시간들로 꽉 채워 지기를 우리의 혼탁한 삶에서 다시 한번 더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