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성준 기자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반을 다지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계몽운동에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서거 제87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도산안창호기념관(서울 강남구)에서 열린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추모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하며, 국민의례와 약전 봉독, 추모 식사 및 추모사, 추모 공연,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1878년 평남 강서 출생의 안창호 선생은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국민의 자각을 호소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됐으며, 1905년에는 한인친목회를 발전시켜 공립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공립신보를 발행했다.
1907년 귀국 후 양기탁, 안태국, 이승훈 등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조직한 뒤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조직, 초대 회장에 취임한 안창호 선생은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하여 국권회복 활동에 앞장섰다.
특히,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선생을 내무총장에 선임하자 상해로 건너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여 연통제(聯通制)를 실시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했다.
1924년 남경에서 동명학원을 설립하여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졌으며, 1930년에는 상해에서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했다.
이후 안창호 선생은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중병이 들어 보석으로 출옥했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38년 3월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일제강점기, 국내외를 넘나들며 항일결사, 민족계몽, 인재양성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의 큰 족적을 남기신 안창호 선생님의 애국정신은 서거 87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특히,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안창호 선생님을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생애와 정신을 모든 국민이 기억·계승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