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매일생한줄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평생 추위를 견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른 봄, 서울 도심 속 비원(창덕궁 후원)에 홍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꽃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꽃잎은 이미 봄을 알린다. 겨울 끝자락의 매화는 매섭고도 단아하게 피어난다. 이를 기다려온 이들의 발걸음이 창덕궁 후원으로 이어진다.
매화(梅花)일까, 매실(梅實)나무일까? 꽃을 중시하면 ‘매화나무’, 열매를 중심에 두면 ‘매실나무’라 부른다. 지금의 매화는 분명히 꽃이다. 봄의 문을 두드리는 꽃, 향기로 계절을 여는 나무다.
매화는 이름 따라 여러 얼굴을 가진다. 눈 내린 매화는 설중매(雪中梅), 달빛에 비친 매화는 월매(月梅), 옥처럼 곱다고 하여 옥매(玉梅), 향기로운 매화는 *매향(梅香)*이라 불린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옛 시인과 화가, 선비들에게 사랑받아온 꽃이기도 하다.
매화를 찾아 떠나는 일을 심매(尋梅) 혹은 *탐매(探梅)*라 한다. 이른 봄, 조심스레 꽃봉오리를 틔운 매화를 찾아 떠나는 길은 단순한 산책을 넘어선 ‘자연과의 문답’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 있다. 한때는 경남 산청 단속사지의 ‘정당매’가 최고령으로 알려졌으나, 아쉽게도 최근에 고사했다. 지금은 선암사가 그 명맥을 잇는다. ‘매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퇴계 이황은 “매화는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문장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고고한 매화처럼, 그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살아갔다. 이 말 속엔 어떤 시류나 환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곧은 정신이 담겨 있다.
또한, “방은 운치만 있으면 그만이지 어찌 꼭 넓어야 하며, 꽃은 향기만 있으면 그만이지 많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처럼, 매화는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홍매화가 붉게 물든 후원, 그리고 그 곁을 오가는 사람들의 미소. 서울 도심 속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는 봄의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