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전득준 기자 | 200여 년 그림을 한자리에 볼 수 있는 기회
<林田 허문 초대전과 운림산방 5대전>
향기로운 봄 내음과 함께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특별한 전시를 기획했다. 조선 말기 이후 가난과 고행에서도 줄곧 한 우물만 판 소치 허련 선생의 집안 전시다. 전라남도 진도에 소재한 운림산방 기념관에서도 보기 어려운 5대에 걸친 화업을 한자리에 모은 『林田 허문 초대전과 운림산방 5대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관장 구본호) 1층과 2층에서 2024년 3월 27일부터 4월 8일까지 2주간 만나볼 수 있다.
200여 년의 화업을 이어오는 건 세계미술사에서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단순한 기능이나 기술의 전수로 이어지는 전통공예가 아닌 순수한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순수예술 분야에서 대물림한다는 건 더욱 희귀한 일이다. 직계 화맥 5대에 걸쳐 모두 한국미술사에 큰 획을 그을만한 작품을 남기고 있으니 더욱 더 경이롭다.
이런 운림산방 5대를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가 국내 최초로 기획한 전시이다. 전남 진도에 위치한 운림산방은 1대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 선생이 그림을 그렸던 화실 이름, 즉 당호이나 지금은 허씨 일가가 일군 장구한 화맥을 상징하는 당호를 일컫는다. 소치 허련을 시작으로 하여 2대 미산 허형, 3대 남농 허건, 임인 허림, 4대 임전 허문 그리고 5대 허진와 허재 등 조선 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이루었다.
한국 남화의 전통을 세운 운림산방의 시조인 1대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윤씨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윤공재가의 3대 명화첩을 임묘하려 해남으로 갔다. 그곳 대흥사의 초의선사(草衣禪師)와 인연이 되어 인격과 학문을 익히고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문하에 입문해 그림을 배웠다. 그 후 소치의 명성이 헌종에게 알려져 어전에서 그림까지 그렸다 하여 명성이 더 높아졌다. 49세 때인 1857년에 귀향하여 건립한 곳이 운림산방이다. 이곳에서 만년까지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다.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1층 그랜드관에는 전통적인 수묵산수의 기법을 초월하는 독자적인 선염기법의 <운문산수화>를 창안한 4대 『임전 허문 초대전』을 특별하게 구성했다. 운림산방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조형적인 해석, 즉 개별적인 형식의 완성을 목표로 해왔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1980년대부터 새로운 수묵화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전대미문의 독자적인 조형기법을 완성했다. 이른바 <운무산수>라는 선염기법을 중심으로 하는 초현실적인 산수풍경이다.”라고 했다.
2층 전시장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운림산방 5대에 걸친 작품이 세대별 5~8점씩 총 40여점을 감상 할 수 있다. 이 자리는 한국 남화의 전통을 세운 1대 소치 허련을 비롯해, 남종 문인화의 품격을 세운 2대 미산 허형, 서정적인 실경으로 신남화를 제창한 3대 남농 허건, 타고난 미적 감각의 요절한 천재화가 3대 임인 허림, 독창적 선연법의 운무산수 4대 임전 허문, 역사인식과 인간의 내면적인 욕망을 형상화 한 5대 허진, 실경의 틀을 깬 5대 허재 등 운림산방 5대 작가 7명의 독창적인 작품 성향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자리는 남종산수화의 변화과정과 한국 근대미술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보기 드문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인사아트프라자 박복신 회장은 “한국 남종화의 대를 잇는 운림산방 5대 전시를 통한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를 공부할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며, 한국 수묵화의 위상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짐작합니다.”라고 말했다.
K-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우리의 전통 수묵화와 사상 또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화 복고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뜻 깊은 전시이며, 5대에 걸쳐 200여 년간 화업 활동을 이어온 운림산방은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