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정부 내 대북정책 조율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외교부가 추진한 ‘한·미 대북정책 협의’에 대해 통일부가 공개적으로 불참 입장을 밝히면서, 대북정책의 주도권과 정책 결정 구조를 둘러싼 부처 간 이견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부처 갈등을 넘어, 향후 한국의 대북정책 운용 체계와 한·미 공조 구조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외교·안보 라인의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외교부 주도 협의체 추진과 통일부의 반발
외교부는 최근 한·미 간 대북정책 조율을 명분으로 한 고위급 협의체 개최를 추진했다. 외교부는 이를 “한·미 외교 당국 간 정례적 정책 소통”으로 규정하며, 대북정책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실무적·외교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해당 협의체가 사실상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외교부가 선점하는 구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통일부는 대북정책의 헌법적·법적 주무 부처는 통일부이며, 외교부 주도의 협의체가 정례화될 경우 대북정책의 중심축이 외교 라인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 같은 입장 차이로 통일부는 해당 협의에 불참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미 워킹그룹’의 기억과 정책 트라우마
이번 갈등의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 시절 운영됐던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정책적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워킹그룹은 대북제재와 남북협력 사안을 조율한다는 명분 아래 출범했지만, 남북관계 진전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통일부 내부에서는 새로운 협의체가 워킹그룹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강하다. 명칭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과의 사전 조율을 통해 남북정책의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반면 외교부는 “과거 워킹그룹과는 성격이 다르며, 단순한 정책 소통 창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엇박자’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도 중요하다. 워싱턴은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에서 한국 정부 내부의 일관된 메시지를 중시해 왔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공개적으로 엇갈린 입장을 드러낼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의 정책 결정 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핵 문제, 대북 억지 전략, 인도·태평양 전략과 연계된 대북 접근법이 동시에 논의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 내부의 조율 실패는 한·미 공조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회의 참석 여부가 아니다. 대북정책의 최종 조정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한·미 공조 체계 속에서 한국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질문이 놓여 있다.
외교부 중심의 협의체가 정례화될 경우, 대북정책은 외교·안보 프레임에 더욱 강하게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통일부 중심 체계가 유지될 경우, 남북관계 관리와 교류·협력이라는 정책 축은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명확한 역할 분담과 정책 조율 메커니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향후 전망과 외교적 함의
이번 사안은 “대북정책 컨트롤타워 재정립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난 충돌”로 이해된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정리하느냐다.
향후 △대통령실 차원의 명확한 조정, △부처 간 역할 구분의 문서화, △한·미 협의체의 성격과 권한 범위에 대한 투명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논란은 한국의 대북정책 신뢰도와 외교적 일관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북정책은 국내 정치와 외교, 안보가 교차하는 고난도의 정책 영역이다. 조율 없는 공조는 공조가 아니며, 주도권 다툼 속 정책은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이번 논란이 단순한 부처 갈등으로 끝날지, 아니면 한국 대북정책 체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지는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