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범죄 소굴의 나라, 캄보디아] 제2편 부재한 국가, 무기력한 외교...정부는 어디 있었나

- “국민의 생명은 외교의 뒷전인가”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준석 기자 |  한국인 대학생 박모(22) 씨가 캄보디아에서 납치·살해된 지 두 달.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정부는 “총력 대응”을 외쳤다. 하지만 그 사이, 박 씨는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민들은 냉정하게 물었다. “정부는 대체 어디에 있었나.” 늑장 공조와 책임 미루기, ‘절차’에 가려진 생명, 7월 말, 피해자의 가족이 “동생이 감금된 것 같다”며 신고했을 때, 경찰은 곧바로 휴대전화 위치가 해외로 잡힌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즉시 현지 수사 요청이나 긴급 공조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경찰은 외교부로, 외교부는 공관으로, 공관은 현지 경찰로, ‘절차’라는 이름의 릴레이 속에서 골든타임은 허무하게 흘러갔다. 수많은 서류와 공문, ‘관할 확인’이라는 명목 아래 한 젊은 생명의 외침은 행정의 벽에 막혀 사라졌다. 그리고 두 달 뒤, 박 씨의 시신이 발견되자 정부는 그제야 부검과 합동수사단 파견을 발표했다.

 

마치 모든 것이 ‘이제야 시작’인 듯한 태도였다. 국민의 생명이 두 달이나 방치된 뒤에야 “총력 대응”이라니, 이것이 과연 ‘국가’가 존재하는 사회의 모습인가. 대통령의 지시로야 움직이는 관료주의 이번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정부가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외교부와 경찰,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보고 체계’와 ‘지휘선 확인’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생명을 구하는 현장 대응은 뒤로 밀렸다. 국민이 죽어간 뒤에야 열리는 긴급회의, 그리고 “절차상 지연이 있었다”는 말로 덮어버리는 행정 언어들. 이것은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국가의 무감각이다.

 

관료주의가 생명을 늦추고, 책임 회피가 죽음을 정당화하는 구조인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비극이다. 국민의 생명은 외교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국익’을 이유로 동남아 현지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국민이 납치·살해된 상황에서도 ‘외교적 관계’를 우선한다면, 그 국익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외교는 협력의 예술이지만,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외교는 존재 이유가 없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은 그 어떤 통상 이익보다 크다. 이번 사건은 한국 외교의 가장 약한 고리이다. ‘사후대응 외교’의 민낯을 드러냈다. ‘국가의 부재’를 넘어, 시스템의 부활이 필요하다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긴급 파견을 보내는 방식은 20세기형 대응이다.

 

이제는 해외 실종·납치 사건 즉시 대응 시스템을 ‘국가안보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 외교부의 서류 절차를 넘어서는 통합 위기대응본부와 국제수사공조팀이 상시 가동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지와 속도의 문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무기력한 시스템이 드러난 경고음이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국가는 존재의 이유를 잃는다.” 이제라도 정부는 외교의 수사修辭가 아닌 행동과 책임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늦은 사과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희생을 막는 즉각적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