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가려움은 일상이 되고, 긁는 행위는 습관이 된다. 잠결에도 긁고, 피가 날 때까지 긁는다. 차라리 고통이 가려움보다 낫다고 말하는 이들. 난치성 피부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토피 피부염을 비롯해 습진, 건선, 물집성 질환, 원인불명의 발진과 알레르기성 피부질환까지 현재 알려진 피부질환만 100여 종에 이른다. 특히 건선처럼 각질이 하얀 가루로 떨어지는 질환이나 얼굴·팔·다리·전신으로 번지는 피부병은 단순한 신체 질환을 넘어 삶의 질과 사회적 관계까지 위축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부질환을 겪는 많은 이들은 병원과 한의원, 대체요법, 국내외 치료법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수년, 수십 년의 시간 끝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피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다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 반복 속에서 상처는 피부뿐 아니라 마음에도 깊이 남는다.
이러한 가운데 경남 밀양과 대구에서 ‘피부병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발대식이 열려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모임은 완치를 약속하는 치료 집단이 아니라, 피부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자는 취지의 자발적 연대 공동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이번 발대식은 이재화 연구소 대표(이재화)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 대표는 2010년부터 동충하초를 재배해 온 농부로, 2017년 우연히 피부질환을 겪는 고객을 만나면서 피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천연 농산물을 활용한 재배 연구를 이어오던 중 일부 참여자들로부터 피부 상태가 호전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경험을 계기로 2023년부터 피부질환을 겪는 이들 800여명을 직접 만나 소통과 연구를 병행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재화 대표는 “세상이 포기하더라도 희망만큼은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며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농산물 재배와 정보 공유, 경험 나눔을 통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모임은 특정 치료법을 강요하거나 결과를 단정 짓지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피부질환으로 지쳐온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고립에서 벗어나 희망을 나누는 연대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피부병으로 인해 숨겨왔던 삶이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이 작은 움직임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