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2020년대 중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국제정치의 핵심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개발도상국을 포괄하는 이 집단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풍부한 자원, 성장 잠재력, 그리고 국제기구에서의 압도적 표심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의 향방을 좌우하는 결정 변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외교 역시 이 흐름에 발맞춰 방향 전환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24~2025년을 기점으로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원조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재정의하며 외교·경제 전략의 중심축으로 끌어올렸다.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 “대안 시장이자 자원 파트너
글로벌 사우스가 한국에 갖는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공급망 다변화다.
미·중 갈등 장기화로 특정 국가 의존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한국은 새로운 자원·생산·소비 거점을 적극 모색해 왔다.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 전환의 핵심 광물인 리튬·니켈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아프리카 주요국과의 자원 외교가 강화되고 있다. 동시에 제조업 생산기지는 인건비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중국을 대체해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으로 빠르게 분산되고 있다.
시장 측면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인도 등 인구 대국을 중심으로 K-컬처와 결합한 소비재, ICT, 보건의료 분야 진출이 가속화되며 글로벌 사우스는 ‘대안 시장’을 넘어 미래 핵심 시장으로 부상했다.
안보와 외교 지형 변화… “표심을 잡는 자가 질서를 만든다”
글로벌 사우스의 중요성은 경제를 넘어 안보와 외교 영역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들 국가는 유엔을 비롯한 주요 국제기구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하며, 각종 결의안과 규범 형성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북 제재 공조, 국제 규범 논의, 중견국 외교의 공간 확보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핵심 외교 우군으로 끌어안고 있다. 특히 식민지 경험과 전쟁을 극복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의 발전사는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현실적인 발전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K-공공외교’의 차별성… 원조를 넘어 기술과 제도 이전으로
한국의 접근 방식은 전통적인 서방 공여국과 결이 다르다.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닌 지식·제도·기술 이전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식공유사업(KSP)이다. 이는 한국의 행정 시스템, 디지털 정부, 산업 정책 경험을 직접 전수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로부터 지속 가능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 그리드, 재생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협력은 기후 위기와 디지털 격차에 취약한 국가들에게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며 한국을 ‘녹색 사다리 국가’로 부각시키고 있다.
다극 질서의 시험대… 정교한 ‘맞춤형 실용 외교’가 관건
이들 국가는 미·중 사이에서 실용적 중립을 추구하며, 국가별 이해관계 역시 극도로 복잡하다. 따라서 한국 외교의 성패는 국가별 맞춤 전략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인도는 정치·경제 대국으로서 전략적 협력의 중심축이며,
- 인도네시아는 자원과 아세안의 허브,
- 멕시코는 북미로 진입하는 관문,
- 브라질은 중남미 질서를 이끄는 리더 국가로 각각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2026년 현재, 글로벌 사우스는 한국 외교에 있어 선택지가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미·중 양극 질서의 틈새에서 한국은 서구의 가치와 개발도상국의 실용적 이익을 연결하는 ‘가교 국가(Bridge Power)’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 설정은 더 이상 부차적 외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다극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시험대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