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동정

[심층분석] '외교통상부 부활론'… 외교·안보 중심의 통상 패러다임 전환기 맞나

- 조현 장관의 작심 발언, 논의의 불씨를 당기다
- 국회의 합세: 여야 전직 외교관들의 '통상외교법' 공동 발의
- 산업부의 강력 반발 "전시 상황에 장수를 바꿀 순 없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관세 압박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2026년 초, 외교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외교통상부 부활론'이 강력한 화두로 떠올랐다. 단순한 부처 간의 업무 조정을 넘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와 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통상 시스템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논의에 다시 거대한 불을 지핀 것은 부처 수장인 조현 외교부 장관의 공개 발언이다. 조 장관은 지난 1월 29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통상 기능이 외교부에 있었다면 협상을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할 때 (통상교섭본부 환원을) 제기하겠다"고 직격했다.

 

외교부 수장이 직접 통상 조직 개편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25% 관세 재인상 압박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의 통상 당국이 미국 측의 외교적 사전 경고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외교가 안팎의 비판적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조 장관은 2월 초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은 한국의 대미투자특별법 등 통상 공약 이행 지연에 대해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강경한 기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통상 문제가 동맹 전반의 리스크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교적 해법'과 전 세계 공관망을 활용한 포괄적 정보 수집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외교부의 이러한 기류는 국회의 입법 움직임으로 즉각 이어졌다. 지난 2월 9일,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김건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은 외교부의 '통상외교' 기능을 복원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들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최근의 통상 이슈는 단순한 경제를 넘어 외교·안보 영역과 깊게 연관돼 있다"며, 외교부가 통상교섭 업무를 직접 수행해야 얽혀있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외교 중심의 통상'에 힘을 실어주면서 조직 개편 논의는 급물살을 타는 형국이다.

 

반면, 통상교섭본부를 사수해야 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통상 기능이 외교 정치의 논리에 휘둘릴 경우, 반도체·자동차 등 국내 핵심 산업 현장의 실익이 희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개정안 발의 당일인 2월 9일, 통상 조직 이관론에 대해 "전쟁 중에 조직을 바꿀 수는 없다"며 조직 개편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함을 명확히 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미국의 통상 압박을 막아내기 위해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통과 등 실물 경제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부처 간 거버넌스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이 산업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2026년 현재 맞닥뜨린 무역 환경은 과거 자유무역 시대의 문법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통상'은 곧 '안보'이자 '동맹'의 척도가 되었다.

 

조현 장관의 소신 발언과 여야의 개정안 발의로 수면 위에 떠오른 '외교통상부 부활론'은 결국 국가 생존 전략의 무게추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장의 수출 전선을 방어해야 하는 산업부의 '실물 경제론'과, 동맹과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총동원해야 한다는 외교부의 '경제안보론' 사이에서 정부와 국회가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