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이란발 중동 위기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벼랑 끝에 선 가운데, 한국 외교가 전례 없는 성과를 연이어 창출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2,400만 배럴의 원유 최우선 확보와 성공적인 교민 구출 작전 이면에는, 수십 년간 축적해 온 K-방산의 '하드파워'와 상호 존중에 기반한 '소프트파워'의 절묘한 조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 중동 외교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다극화 시대의 새로운 생존법을 제시한 한국의 입체적 안보 전략을 심층 분석한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중동 내 무력 충돌 격화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는 초유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다. 전 세계가 물류 마비와 유가 폭등의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한국 외교는 오히려 칠흑 같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중동 4개국에 갇힌 교민 200여 명을 단 하루 만에 구출해 낸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투입 작전 '사막의 빛'과,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일일 소비량의 8배에 달하는 2,400만 배럴의 원유를 '최우선(No.1 Priority)'으로 확보한 쾌거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이례적인 외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중동 정세의 격랑 속에서 한국 외교가 다시 한번 거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외교부는 17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조현 외교부 장관의 G7 외교장관 확대회의 참석 소식을 알리면서도, 이면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내 ‘해상 태스크포스(TF)’ 참여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침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장관은 전날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긴급 유선 협의를 가졌다. 겉으로는 ‘중동 정세 평가 및 소통’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국들에 요구하는 ‘해상 안보 비용 및 역할 분담’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브리핑에서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TF 참여 요청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외교 채널을 통한 소통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답변은 사실상 미국의 요청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국회 외통위에서 나온 ‘공식 요청 여부’에 대한 조현 외교부 장관의 모호한 답변은 정부가 이란과의 관계 및 파병의 법적 근거를 두고 치열한 내부 논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세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이었다. 그러나 지금 국제 사회의 중심에는 기술 패권 경쟁과 지정학적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경쟁이 군사·외교 갈등과 결합하면서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지는 ‘경제 안보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한 주 동안 나타난 주요 국제 이슈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신냉전 초기 단계에 가까운 구조적 경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는 단연 AI와 반도체 산업이다. 특히 중국은 최근 국가 전략 발표를 통해 2030년까지 산업 전반의 AI 활용률을 9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제조업·금융·국방·행정 등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 AI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전략은 단순한 기술 정책이 아니라 미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기술 자립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첨단 반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중동의 전운이 서울 한복판의 치열한 외교 공방전으로 옮겨붙었다. 5일 주한 이란대사와 이스라엘대사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전을 펼친 가운데, “한국이 침묵하면 전쟁에 동의하는 것”이라는 이란의 압박과 “제1차 북핵 위기의 교훈을 얻었다”는 이스라엘의 정당성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같은 날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중동 지역 내 대규모 재외국민 철수 작전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경제안보 위기 상황을 설명했으며, 외교부는 직접적인 논평을 피한 채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라는 단 한 줄의 정제된 수사를 내놓았다. 이날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한 이란대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움직임을 '불법적 무력 사용'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역할을 강하게 촉구했다. 반면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이란 핵 시설 타격 필요성을 역설하며 과거 북한의 핵 개발을 초기에 저지하지 못한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타국 대사의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삼가면서도, "국제 비확산 체제에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관세 압박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2026년 초, 외교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외교통상부 부활론'이 강력한 화두로 떠올랐다. 단순한 부처 간의 업무 조정을 넘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와 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통상 시스템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논의에 다시 거대한 불을 지핀 것은 부처 수장인 조현 외교부 장관의 공개 발언이다. 조 장관은 지난 1월 29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통상 기능이 외교부에 있었다면 협상을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할 때 (통상교섭본부 환원을) 제기하겠다"고 직격했다. 외교부 수장이 직접 통상 조직 개편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25% 관세 재인상 압박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의 통상 당국이 미국 측의 외교적 사전 경고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외교가 안팎의 비판적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조 장관은 2월 초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하버드대 경제학자 Kenneth Rogoff는 저서 Our Dollar, Your Problem에서 1971년을 현대 통화질서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지목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 Richard Nixon은 달러의 금 태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미 재무장관은 항의하는 동맹국들 앞에서 “달러는 우리의 것이고, 문제는 당신들 몫”이라는 말을 남겼다. 로고프는 이 장면을 달러 패권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장기적 불안정의 씨앗으로 해석한다. 금본위제를 떠난 미국은 중앙은행 독립성과 제도적 신뢰를 통화 안정의 ‘마지막 앵커’로 삼았지만, 오늘날 그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달러의 초과지배(super-dominance)는 단순한 GDP 순위의 결과가 아니다. 로고프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을 강조한다. 첫째, 압도적 금융 인프라다. 글로벌 외환 거래의 상당수는 여전히 ‘자국 통화 → 달러 → 상대국 통화’의 이중 구조를 따른다. 깊은 유동성과 표준화된 결제망이 달러를 세계 금융의 허브로 고착시켰다. 둘째, 군사·제재 권력의 결합이다. 달러 결제망을 장악한 미국은 글로벌 거래의 ‘백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관세 중심의 무역 갈등을 넘어 금융·기술·규칙을 둘러싼 시스템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미국·일본의 협력은 군사 안보를 넘어 반도체와 핵심 기술을 축으로 한 통상·공급망 동맹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관세의 시대가 저물고, 경제 시스템 자체가 외교의 최전선이 된 것이다. 관세에서 금융과 기술로그동안 미·중 갈등의 상징은 관세였다. 그러나 2025년 말 현재, 워싱턴의 전략은 분명히 달라졌다. 추가 관세보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금융 접근 제한, 첨단 기술 투자 차단, AI·반도체·양자 기술에 대한 제도적 봉쇄가 핵심 수단으로 부상했다. 이는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기업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다.미국은 금융 규칙과 기술 표준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비싼 경쟁자’가 아니라 ‘제한된 참여자’로 만들고자 한다. 이에 맞서 중국은 기술 자립과 대체 금융 네트워크 구축을 서두르고 있지만, 단기간에 격차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맹의 경제화, 경제의 안보화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