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주간 국제 정세]AI 패권 경쟁과 지정학의 충돌… ‘각자도생’의 세계 질서

-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 AI와 반도체
- 보호무역의 귀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 강대국 경쟁 속 ‘글로벌 사우스’의 실용 외교
- 중동과 동아시아… 세계 경제를 흔드는 안보 리스크
- ‘경제 안보 시대’의 도래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세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이었다. 그러나 지금 국제 사회의 중심에는 기술 패권 경쟁과 지정학적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경쟁이 군사·외교 갈등과 결합하면서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지는 ‘경제 안보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한 주 동안 나타난 주요 국제 이슈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신냉전 초기 단계에 가까운 구조적 경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는 단연 AI와 반도체 산업이다.

 

 

특히 중국은 최근 국가 전략 발표를 통해 2030년까지 산업 전반의 AI 활용률을 9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제조업·금융·국방·행정 등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 AI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전략은 단순한 기술 정책이 아니라 미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기술 자립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칩 기술을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협력해 중국이 최신 반도체 장비와 고성능 AI 칩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압박 속에서 중국은 이른바 ‘차선 변경을 통한 추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칩렛(Chiplet) 구조다. 이는 여러 개의 중급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고성능 컴퓨팅 능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첨단 공정 기술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AI 연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은 멀티모달 AI와 자체 클라우드 생태계를 구축하며 기술 의존도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되면서 세계 반도체 산업은 점차 정치적 블록에 따라 재편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 경쟁은 자연스럽게 보호무역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는 수입품 전반에 대한 관세 인상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면서 글로벌 무역 시장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통상 정책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고려한 산업 보호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들도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유치를 위해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첨단 산업을 자국 내에 유치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팬데믹과 전쟁을 겪으며 공급망이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글로벌 산업 구조는 점차 ‘효율성 중심 공급망’에서 ‘안보 중심 공급망’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편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견국과 신흥국들은 새로운 외교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은 특정 강대국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피하면서 ‘다동맹(Multi-alignment)’ 외교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전략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안보 협력은 미국 중심

  • 경제 협력은 중국과 병행

  • 기후 및 개발 협력은 유럽 및 국제기구 활용

즉 사안별로 협력 파트너를 달리하는 유연한 다자 외교 모델이다.

 

이러한 전략은 흔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외교로 불리며, 냉전 시대 비동맹 운동과는 달리 훨씬 실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실제로 많은 신흥국 정부는 강대국 경쟁을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투자와 기술 이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최근 국제 정세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는 지역 분쟁이 세계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동 지역이다.

 

이스라엘,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중동 전체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어 국제 유가가 지금보다 더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최근 홍해 항로에서도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면서 글로벌 해상 물류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곧 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동시에 동아시아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국방 예산을 확대하며 대만 해협 주변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거점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기술 산업 전체가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제 질서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이다.

과거에는 경제와 군사 전략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 반도체 → 국가 전략 자산

  • 인공지능 → 군사 및 정보 경쟁의 핵심

  • 공급망 → 국가 안보 인프라

경제력이 곧 안보력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변화 속에서 앞으로의 국제 경쟁은 단순한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혁신 능력, 공급망 안정성, 외교 전략의 유연성이 결합된 종합적인 국가 역량이 국가의 위상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질서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AI와 지정학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