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관세 중심의 무역 갈등을 넘어 금융·기술·규칙을 둘러싼 시스템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미국·일본의 협력은 군사 안보를 넘어 반도체와 핵심 기술을 축으로 한 통상·공급망 동맹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관세의 시대가 저물고, 경제 시스템 자체가 외교의 최전선이 된 것이다.

관세에서 금융과 기술로
그동안 미·중 갈등의 상징은 관세였다. 그러나 2025년 말 현재, 워싱턴의 전략은 분명히 달라졌다.
추가 관세보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금융 접근 제한, 첨단 기술 투자 차단, AI·반도체·양자 기술에 대한 제도적 봉쇄가 핵심 수단으로 부상했다. 이는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기업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금융 규칙과 기술 표준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비싼 경쟁자’가 아니라 ‘제한된 참여자’로 만들고자 한다. 이에 맞서 중국은 기술 자립과 대체 금융 네트워크 구축을 서두르고 있지만, 단기간에 격차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맹의 경제화, 경제의 안보화
이러한 구조 변화는 동아시아 동맹 지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미국·일본 간 공조는 더 이상 북한 대응에 국한된 군사 협력이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AI, 핵심 광물 등 전략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공급망 협력이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미국, 일본은 사실상 공급망 공동체를 형성하는 단계로 진입했으며, 산업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의 경계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제 반도체 공장은 단순한 산업 시설이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으로 취급된다.
왜 지금인가
이 변화의 배경에는 분명한 현실 인식이 있다.
중국 의존형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전쟁과 제재, 지정학적 충격은 예외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첨단 제조 역량을 누가 통제하느냐가 곧 국가 생존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
한국은 이 구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지만, 미국은 안보와 금융, 기술 접근의 핵심 축이다. 한·미·일 공급망 동맹 참여는 안정성과 기술적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중국의 경제적 반발과 시장 리스크를 동반한다.
더 이상 ‘중립’이라는 선택지는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분절되는 글로벌 시스템 속에서 작동 가능한 외교·산업 전략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시스템 경쟁의 시대
미·중 전략 경쟁의 질적 전환과 한·미·일 공조의 경제화는 개별 사건이 아니다. 이는 관세 중심의 무역 질서가 해체되고, 규칙과 시스템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된 시대적 전환을 의미한다.
총성보다 공급망이, 정상회담보다 규칙이 외교를 좌우하는 시대. 한국 외교는 지금, 선택이 아닌 설계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