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UN 보고서에서 ‘행정 전환’까지…가자 사태가 던진 다자주의의 시험대

- 중동 전쟁 출발점이 된 UN 인권 보고서
- UN 체제 배제와 대안 거버넌스 구상
- 엇갈린 국제사회 평가
- 다자주의의 구조적 시험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2026년 3월 1일은 국제 질서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스라엘 정부가자지구유엔 및 국제기구의 활동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UN 중심의 인도적 거버넌스가 구조적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조치는 미국,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과 맞물려, 중동 질서 재편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번 ‘행정 전환’ 조치를 이해하는 핵심 출발점은 2024년과 2025년에 잇달아 발표된 두 건의 유엔 보고서이다.

 

 

2024년 7월,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권상황 특별보고관은 보고서 Anatomy of a Genocide를 통해 가자지구 상황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협약의 구성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어 2025년 9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독립 국제 조사위원회(COI)는 2023년 10월 이후 상황을 종합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집단 구성원 살해, 중대한 신체·정신적 피해, 치명적 생활 조건 부과, 그리고 ‘특수 의도(Dolus specialis)’의 존재 여부 등을 법률적으로 검토했다.

 

두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모든 국가(UN가입국)가 제노사이드 방지·처벌의 대세적 의무(Erga omnes)를 부담한다고 강조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이전 중단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 절차 협력을 촉구했다.

 

국제법적 책임 문제가 공식 문서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면서, 가자 사태는 단순한 전시 사태의 인도 문제를 넘어 국제형사책임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 같은 법적·정치적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 정부는 3월 1일 0시를 기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를 포함한 국제 NGO들의 가자지구 내 활동 자격을 박탈했다. 정부는 기존 구호 시스템이 무장조직에 유입됐다고 주장하며, 이를 ‘테러 인프라와의 절연’ 을 위한 조치로 규정했다.

 

동시에 미국 및 일부 아랍 우방국이 참여하는 ‘평화위원회(BoP)’ 산하 ‘가자 행정위원회(NCAG)’ 구상을 제시했다. 이는 UN 중심의 보편적 다자 시스템을 특정 국가 연합 중심 관리 체계전환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NCAG가 대표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제사회 일부에서는 이 기구가 이스라엘 중심 구조로 운영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사회 반응은 분명히 갈린다.

 

알자지라와 가디언 등은 이번 조치를 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 인권 보호를 위한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으로 평가하며, 식량·의료 접근권이 정치·군사적 조건과 연계될 위험을 지적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보수 성향 매체는 기능적 한계를 드러낸 UN 체제 대신, 책임 주체가 명확한 국가 연합 모델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안정 확보를 위해서는 집행력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월 28일 이란을 대상으로 한 미국·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역시 가자 조치와 전략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지역 전면전 가능성에 집중된 가운데, 가자지구의 행정 질서 전환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추진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란이 역내 무장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에서, 테헤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가자 봉쇄 및 재편 구상의 외부 변수 제거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향후 역내 정세 변화에 따라 이러한 분석은 재평가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가자지구 통치 문제를 넘어, UN 중심 다자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사례로 부상했다. 유엔 인권 보고서가 법적 판단의 언어로 문제를 규정하자, 당사국은 현장 거버넌스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규범과 권력 정치의 충돌 양상이 선명해졌다.

 

향후 쟁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UN 보고서가 국제 재판 절차에서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2. BoP 체제가 기존 다자 구호 시스템을 대체할 정당성과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3. 국제사회가 ‘Erga omnes’ 의무를 실제 정책 조치로 전환할 것인가.

가자지구는 이제 단순한 분쟁 지역이 아니라, 국제법 질서와 국가 중심 권력 정치가 교차하는 시험장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복합적인 전략적 선택지에 직면해 있다. 인권과 국제 규범을 중시하는 여론은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경제계 일각에서는 에너지 시장 불안과 향후 가자 재건 사업 참여 가능성을 고려한 실용적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보편적 가치 수호와 국익 간 균형이라는 전통적 외교 과제를 한층 첨예한 환경 속에서 다시 마주하고 있다. 단순한 유감 표명을 넘어, 변화하는 지역 거버넌스 체제 속에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제 인도법 및 다자주의 원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가자 ‘행정 전환’은 일회성 조치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UN 보고서에서 촉발된 법적·외교적 압박과 이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 맞물리며, 중동뿐 아니라 국제 질서 전반의 방향성을 시험하고 있다.